스티브잡스는 오랫동안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려왔다. 1970년대 애플을 공동 창업해 억만장자에 오른 약관의 청년은 1980년대 이미 타임지 표지를 장식할 만큼 성공을 거뒀다. IT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지만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고 1985년에는 넥스트컴퓨터를 말아먹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픽사로 재기의 신호탄을 쏜다.
1996년 고향으로 돌아온 스티브잡스는 더 이상 파릇파릇하지 않았지만 드라마틱한 재기에 성공한다. 2001년 아이튠즈와 아이팟을 내놓으며 디지털 음악 시장을 석권했다. 그것도 단순 제품이 아니라 생태계 자체를 만들어 정복한 것이다. 그는 2001년 디지털 음악 산업에 자신의 각인시킨 뒤 “10년 후 애플은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음반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스티브잡스는 2007년 휴대폰 시장에 명함을 내민다. 아이폰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이젠 넷북은 버리라”며 아이패드로 태블릿 시장까지 진입했다. 스티브잡스는 지난 2010년 한 행사장에서 “애플은 이제 모바일 회사”라고 말했다.
스티브잡스의 성공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가 늘 되풀이하던 다르게 생각(Think Different)하라는 것, 또 하나는 단순화와 간결함, 함축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프레젠테이션이 의미하는 “핵심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1996년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잡스는 50개나 되던 연구 개발 프로젝트를 10개로 줄였다. 첫 복귀작으로 화제가 됐던 일체형PC 아이맥은 지겨운 회색을 걷어냈다. 그는 제품을 개발할 때에는 철학 가운데 하나인 단순함을 수없이 강조했다. 실제로 아이팟을 개발할 당시에는 버튼 반응 속도는 물론 클릭 3번이면 원하는 음악을 찾을 수 있게 하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신화를 멈추게 한 건 스스로다. 2011년 10월 5일 애플 이사회는 스티브잡스의 사망을 발표한 게 그의 혁신을 멈춘 시점이 됐다. 스티브잡스는 "혁신이라야 말로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Innovation distinguishes between a leader and a follower)"라고 강조해왔다. 시대를 풍미한 혁신가는 그렇게 갔다.
몇 일 전 국내에선 가수 조용필이 화제가 됐다. 19집 앨범
조용필은 데뷔 50주년을 앞둔 국민가수다. 하지만 그는 60대 가수라고 생각하기 힘든 ‘젊음’을 들고 나왔다. 버벌진트의 랩 피처링을 넣는 등 파격을 담았다. 앨범 발표 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조용필 미디어 리스닝 파티에선 젊은 감각에 호평이 쏟아졌다.
1975년 조용필에게 첫 성공을 가져다준 곡은 트로트 음악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대마초 파동으로 공백기를 갖다가 1979년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로 국내 최초로 100만장 이상 판매하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다. 그는 1986년 일본에도 진출해 100만 장 이상 판매, 골든디스크를 거머쥐기도 했다. 1994년 조용필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음반 판매량 1,000만 장을 기록한다. 일본에서도 그의 앨범 판매량은 600만 장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조용필을 위대한 음악가로 칭하는 이유가 단순히 판매량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락에서 발라드, 트로트 심지어 민요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소화해내는 전무후무한 음악가다. 하지만 1년에 몇 차례씩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공부하는 등 뮤지컬에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조용필은 콘서트 역사도 다시 썼다. 90년대 들어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나선 콘서트를 통해 그는 지난 2011년 13개 콘서트로 23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45년 간에 걸친 그의 ‘혁신’은 한국 대중가요 사상 처음으로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고(친구여) 조용필학 학문 연구회가 발족되는 등 인정을 받고 있다. 잡스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이런 혁신이 조용필을 추종자가 아닌 리더로 만들게 됐다. 조용필의 신화를 멈추는 이도 역시 그 자신 스스로가 될 것이다.
지난 2009년 애플이 국내 시장에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의 스티브잡스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닌텐도가 성공을 거뒀을 때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국의 닌텐도를 찾아야 한다’는 말에 ‘명텐도’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굳이 있을까. 안주하지 않고 늘 변화에 몸을 던져온, 그것도 무려 45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 인물이 이미 이곳, 한국에 있다. 우리가 지금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 건 코딩이 아니라 조용필 같은 인물이 갖고 있는 혁신, 도전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