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코리아가 대표모델 골프에 힘을 보탤 소형 해치백 ‘폴로(Polo)’를 내놓았다. 2천5백만 원미만 가격대 유일의 독일차로서, 수입차 대중화에 한몫을 해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본격 출시를 하루 앞둔 24일, 시승행사를 통해 폴로를 만나봤다.
글 / 민병권RPM9기자 bkmin@etnews.com
사진 / 민병권, 폭스바겐코리아 제공
폭스바겐 코리아는 기자들을 ‘트레이닝 아카데미’에 입소시켜 요원으로 훈련시키는 한편, 관심 고객들을 ‘폴로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소환해 ‘폭스바겐 보안수사국’에서 진행되는 수사에 응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이색 신차 출시 행사를 기획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부각된 이 차의 강점은 ‘작지만 여리지 않다’는 것. 길가 빈자리에 스핀 턴으로 주차를 해내는, 마치 액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TV광고에도 자신감이 묻어난다.
서울 잠실의 탄천 카트 경기장에 차려진 폴로 트레이닝 아카데미에는 짐카나 코스가 준비됐다. 1인승 꼬마 경주용차에 맞게 설계된 트랙에서 일반 승용차의 시승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이색적이지만, 본 코스보다 더욱 타이트하게 배치된 세이프티 콘들 사이에서 U턴과 슬라롬, 급제동 등 다양한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 과제까지 주어졌다. ‘요원’들 간의 기록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운전은 갈수록 거칠어져 갔다.
운전자 입장에서 페달을 밟고, 운전대를 잡아 돌리고, 몸을 지탱하는 일련의 동작들에서는 골프와 흡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골프라면 통과할 수 없었거나 설설 기어야 했을 코스를 이 차는 잘도 돌아냈다. 폴로의 차체크기와 운동성능이 빛났다. 폴로의 차체크기는 길이 3,970, 너비 1,685, 높이 1,450(mm). 골프보다 229mm 짧고 94mm 좁지만 높이는 별 차이가 없다. 다른 수입 소형차들과 비교하면 귀엽거나 패션성을 추구 했다기보다는 깔끔하고 점잖은 디자인이지만 막상 도로에 나서면 큰 차로 오해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비례를 가졌다.
골프보다 작은 것만큼 경차보다 크기도 하지만, 요금소를 통과할 때 경차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는 어느 골프 오너의 경험담에 비추어, 이 차에서는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엑센트나 프라이드 등 국산 소형 해치백들과 비교해도 조금씩 작은 치수는 골프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폴로만의 영역을 만든다.
폴로의 달리기 성능은 낮은 속도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었다. 카트 트랙을 나와 경기도 남양주의 조안면을 찍고 돌아오는 약 90km의 시승코스에서, 이 차는 자동차전용도로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에도 골프 못지않은 승차감과 안정감을 보여줬다. 특히 운전대를 돌릴 때의 손맛과 그에 따른 거동, 일관성이 높은 만족감을 주었다. 가령, 시승행사장까지 타고 갔던 i30 디젤은 플렉스스티어를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이런 맛이 나질 않았다.
다만, 고속에서 승합차가 옆으로 추월해갈 때 바람의 영향을 받는 모습이나, 도로이음메를 통과할 때의 충격음, 완곡한 요철을 지나 차체가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모습 등에서는 한계가 나타났다.
국내 출시모델에 탑재된 엔진은 1.6리터 디젤 ‘TDI’로, 4,200rpm에서 9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고 1,500~2,500rpm에서 23.5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엑센트에 탑재된 현대차의 1.6리터 디젤이 128마력, 26.5kg·m를 제시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참 약하다. 하지만 막상 타보니 폴로의 차체에서 호쾌한 달리기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출발할 때 운전자의 급조작이 먹히질 않아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것과 변속기의 D모드가 워낙 연료 절약형이라 오른발을 많이 움직여야할 필요가 있다 뿐, 어지간해서는 원하는 속도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품이 들지 않았다. 어쨌든 ‘가솔린 중형차 수준’의 최대 토크를 가졌으니.
S모드에서 풀 가속 시 자동변속 포인트는 4,600rpm을 기준으로 35, 60, 95, 130km/h 정도. 제원상 0-100km/h에 걸리는 시간은 11.5초이고 최고속도는 180km/h이다. 고속에서는 아무래도 가속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저중속에서 이정도 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100km/h에서 1,800rpm에 못 미치는 엔진 회전수를 유지할 수 있는 데는 디젤엔진의 힘을 제대로 뽑아낼 수 있도록 조합된 7단 DSG변속기의 역할이 크다.
꽤 서둘러 달렸는데도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평균 연비 또한 늘어나는 기현상도 경험했다. 시내 정체 구간이 없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결국 18.3km/l의 공인연비를 뛰어넘은 20km/l의 평균 연비를 기록했다. 이 정도라면 남들이 말하는 모든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연비를 핑계로 이 차를 구입할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폴로는 ‘해치백의 교과서’라는 골프의 동생답게 ‘작은 참고서’쯤 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작은 체구지만 뒷좌석 공간은 어중간한 세단보다 낫고, 280리터인 트렁크 공간은 방석을 젖히고 등받이를 접어 967리터까지 확대할 수 있다. 등판과 평편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트렁크 바닥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을 젖혔을 때도 간단히 고정시킬 수 있어 편리하다.
운전석 공간은 비율만 가로로 좀 넓히면 골프라 해도 속을 만큼 별다르지 않다. 다만 가격을 맞추다보니 가죽시트와 선루프, 자동에어컨, 열선시트 등의 사양은 빠졌다. 가장 멋진 실내 장식품은 아마도 DSG 변속기. 그렇다고 완전 깡통은 아니다. ECM룸미러가 있고 깜빡이는 차선변경 기능을 지원하며, 유리창 스위치는 4개 모두 원터치 업다운이 된다. 앞좌석 햇빛가리개의 화장거울 조명은 커버와 연동되어 자동 점등된다. 운전대 깊이 조절 기능을 갖춘 것에 높은 점수를 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모 업체의 시각으로 보자면 원가절감을 해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반대로 이런 부분들이 수입차를 타는 만족감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 주로 팔리는 사양과 비교하면 이미 꽤 고급일 테지만, 폭스바겐 코리아는 국내 시장의 취향을 고려해 ‘R라인 익스테리어 패키지’도 기본으로 적용했다. 겉모습에서만이라도 ‘경제적이라서 타는 약한 소형차’의 이미지를 씻어내고자 한 것이다. 121만원을 더 내면 남 보기에 번듯한 정품 내비게이션을 넣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 차의 단점으로는 우선 엔진 소음을 들어야겠다. 500km도 안 뛴 이번 시승차에 국한된 문제일수 있으나, 저속에서는 물론 꽤 속도를 높인 후에도 따르륵 거리는 소리가 울려 신경 쓰였다. 잡소음이 아니더라도 음량 자체가 준중형급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반면 진동은 5세대 골프 TDI보다 나은 편이었다. 가다서다 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DSG변속기의 퉁명스러움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차체 크기와 엔진 등에서 직접적인 경쟁 모델로 꼽히는 푸조 208 1.6 e-HDi 5도어 (92마력, 18.8km/l)의 가격이 2,990만원인 것에 비추어, 2,490만원인 폴로의 가격은 상당히 공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중저가 수입차 시장을 이끌어온 폭스바겐 코리아가 폴로를 통해 다시 한 번 시장 확대의 칼을 뽑은 셈이다. 폭스바겐코리아 박동훈 사장은 폴로 한 대당 마진이 70~80만원에 불과하다면서, 올해 본사에서 배정받은 2,000대를 파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