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재 기업 현장을 가다](6)바커

모든 기업은 저마다 스토리가 있다. 창업자의 도전정신과 혁신에 대한 열정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기며 전파된다. 감동에만 그치진 않는다. 기업정신은 세대를 이어가며 기업을 키우는 힘이 된다.

[글로벌 소재 기업 현장을 가다](6)바커

100년 전, 70 가까운 나이에 혁신을 꿈꾸며 화학회사를 설립한 인물의 스토리는 지금도 회자될 만하다. 글로벌 화학·재료회사 `바커`를 세운 알렉산더 바커 박사의 이야기다.

바커 박사가 독일 남부 시골마을 브루크하우젠에 바커그룹을 설립한 것은 1914년. 1846년 생인 그의 나이가 만 68세 되던 해다.

혹자는 인생을 정리하고 혹자는 지난날을 후회하며 버킷리스트를 만들 나이에 바커 박사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그의 열정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다. 창업 11년 전인 1903년 바커 박사는 `전자화학 컨소시엄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호기심 충만한 창조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과학자들과 혁신의 장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에서였다. 이후 바커 박사는 연구 성과를 실현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1914년 정식으로 바커그룹을 설립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바커는 25개 생산기지와 100여개국에 영업망을 보유하고 1만7200여 임직원이 근무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10명도 채 안 됐던 연구원은 1000여명으로 늘어났다.

바커가 만드는 제품은 3500여종에 달한다. 세계 100여개국 3500여 고객사가 바커 제품을 사용한다. 지난해에는 46억3500만유로(6조6500억원) 매출과 1억700만유로 순이익을 올렸다.

◇전 산업의 조력자 `바커`

바커는 야금실리콘·메탄올·에틸렌·암염 네 가지 원재료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에너지·건축·반도체·포장재에 필요한 재료를 만든다.

반도체 원재료 실리콘웨이퍼, 접착제를 만드는 디스퍼전, 태양광산업의 쌀 폴리실리콘, 건물 단열재, 친환경 페인트용 비닐아세테이트에틸렌 코폴리머(VAE) 에멀전 등. 제품의 기반이 되는 기초소재에서 고부가가치 첨단소재까지 폭넓게 생산한다.

바커 제품이 들어가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바커는 네 가지 원료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으로 전 산업에 걸친 조력자 역할을 한다.

바커는 4개 사업부와 자회사 실트로닉으로 구성된다. 바커 실리콘사업부는 실리콘 오일, 에멀전, 레진, 고무, 실란트, 흄드 실리카에 이르는 실리콘산업 전반에 걸친 제품 원료를 생산한다.

폴리머사업부는 각종 접착제 원료로 사용되는 VAE 수분산형 수지와 건축용 VAE 분말 수지를 만든다. 이들 제품은 친환경 건축도료, 접착제, 부직포, 건축용 드라이 모르타르, 표면 코팅재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바이오솔루션tm사업부는 사이클로덱스트린 같은 식품 첨가제와 추잉 껌 베이스 등의 바이오테크 제품을 공급한다. 식품, 생명과학, 제약, 생활건강용품, 화장품산업 부문에서 필요로 하는 고기능 소재를 개발한다.

태양광 전지재료인 폴리실리콘은 폴리실리콘사업부가 전담한다. 자회사 실트로닉은 고순도 300㎜ 실리콘웨이퍼를 제조한다.

총 5개 사업 부문은 서로 연결된다. 네 가지 기초원료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고 세일즈 채널 간에 시너지를 내는 구조다. 바커는 최종 제품생산 과정에 생긴 부산물(by-products)도 여러 사업부에 걸쳐 제품으로 활용한다.

기술이 공통된다는 점은 사업 간 시너지를 가능하게 한다. 판교에 있는 한국 연구소만 해도 실리콘 전기전자 연구소(COEE)와 폴리머 기술센터가 함께 있다. 고객사 집중 기술교육 프로그램 `바커 아카데미`도 실리콘·폴리머 등 바커의 여러 사업부 기술을 함께 소개한다.

◇100년 역사의 출발 `R&D`

바커의 모태는 `전자화학 컨소시엄 유한회사`다. 이 회사는 지금도 바커그룹 제품의 기초 연구개발(R&D) 활동을 하고 있다.

바커는 1917년부터 산업용 아세트알데히드, 아세트산, 아세톤을 대량 생산했다. 1922년에는 바이오솔루션tm 제품의 기본 원료가 되는 케텐(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을 양산했다. 1928년 폴리머 제품의 기초가 되는 비닐아세테이트와 폴리비닐 아세테이트로 발을 넓혔다.

이후 1947년 실리콘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1950년대 들어 반도체 웨이퍼용 초고순도 실리콘과 건축용 폴리머 파우더 바인더 사업에 진출했다. 1960년대 초 원자재 베이스를 기존의 아세틸렌에서 에틸렌으로 전환했다.

바커가 글로벌 사업에 눈뜬 것은 1970년대다. 이때부터 세계 주요 지역에 해외지사를 설립해 글로벌기업의 초석을 다졌다. 지금의 5개 사업 부문으로 비즈니스 구조가 정비된 것은 1980년대다.

◇경쟁력과 시장의 원천 `환경`

바커의 주력 제품 대다수는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보존, 친환경을 위한 제품이다. 전력을 절감하는 LED용 소재, 친환경 페인트용 소재, 태양광을 위한 폴리실리콘, 미래 에너지원인 파력발전소를 위한 실리콘 등이다.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바커의 시장은 더욱 커진다.

부르크하우젠 공장은 독일 내 대표적인 친환경 생산기지로 유명하다. 바커는 부르크하우젠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본사는 뮌헨에 있다. 부르크하우젠에서는 주요 제품을 생산한다. 특이한 점은 공장 안에 수로가 설치됐다는 점이다. 수력발전을 위한 용도다.

클라우스 밀라트 팀장은 “공장 가동전력 10%가 수력발전으로 만들어지고 화학처리 공정 중 발생하는 가스와 수증기도 전기로 재활용된다”며 “재활용된 전기는 공장 가동 에너지 비중 40%를 차지한다. 공장 가동을 위한 에너지 50%를 자체적으로 생산한다”고 말했다.

◇미래의 길은 `고부가가치화`

화학공정에서 나오는 생산물 중 원료에 가까운 제품군은 업스트림, 부가가치가 더 붙을수록 다운스트림에 해당한다. 바커는 그동안 업스트림 투자를 전 세계적으로 진행했다. 앞으로는 다운스트림 방향으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대표 제품도 다운스트림 제품군 중심으로 키운다. 일례로 일반 실리콘이 아닌 특정 용도를 위해 기능이 강화된 실리콘을 내놓는다는 뜻이다.

바커의 루미실은 고기능 LED 칩을 고온과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실리콘이다.

세미코실UV는 상온에서 자외선을 통해 수초 내에 실리콘을 경화하는 차세대 실리콘이다. 이 제품은 전자, 자동차 부품을 보호·실링·코팅·접착하는 데 활용된다. 기존 실리콘 접착제는 상온에서 며칠씩 굳히거나 고온공정을 거쳐야 했다. 세미코실UV는 경화속도가 빨라 대량 생산 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광 개시제가 들어 있지 않아 부산물이 생기지도 않는다.

바커의 친환경 페인트 제조용 VAE 에멀전은 규제 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함유된 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냄새가 거의 없기 때문에 주거환경을 보다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

비나파스는 외단열 마감 시스템의 재료가 되는 폴리머 바인더다. 유럽에서는 외단열 마감 시스템 내구성을 보장하기 위해 표준 성능기준(ETA004)을 통과해야 한다. 비나파스는 이 기준에 부합한다.

폴리실리콘도 바커의 대표제품이다. 바커는 지속적으로 폴리실리콘 생산능력을 확대했다. 2014년 말 기준 총 생산능력은 7만톤에 달할 전망이다.

뮌헨, 브루크하우젠(독일)=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