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정경분리

예견됐던 일이었을까. 요즘 안랩 임직원들은 오직 사업에만 전념한다는 플랜을 실천하고 있다. 시기를 특정할 순 없지만, 당분간 눈과 귀를 닫고 `보안 파수꾼` 역할에 충실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안철수 안랩 창업주가 정치인의 길을 선택하면서 외부의 거센 바람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으로 무장된 느낌이다. 대부분의 직원이 이 같은 코드 성분이 담긴 셀프 예방주사를 맞고 신종 항체의 침투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외풍은 만만치 않다. 바람의 세기는 물론 예기치 않은 돌풍도 여기저기서 불어 닥친다.

3·20 전산망 마비 사태도 안랩을 다시 무대 중심으로 인도한 사건이었다. 긴박했던 대선 이후 한숨을 돌리자마자 국내 정보보호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APT 공격이 터졌다. 안랩은 부분 과실을 인정하고 책임있는 기업으로서의 자세를 보였다.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보안산업을 떠나 기업 이미지를 감안하면 상당한 고뇌의 결과물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세상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반하지 않은 추측성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안랩이 지난 12년 간 정부에서 지원받은 금액이 수백억원에 달한다는 것부터 북한에 백신을 제공했다는 문제제기까지 다양하다. 안랩은 본사기준으로 40억5000만원, 투자사까지 합친다면 51억5000만원을 받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상태다. 검찰에서 안랩이 V3 정품을 북한에 넘긴 사실이 없다는 결과도 공식 발표됐지만, V3 제공설은 잊어질 만하면 등장한다. 안철수 의원이 여의도에 입성하자 이번에는 주식 백지신탁 요구가 나온다. 정무위원회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다.

안랩은 지난 1995년 백신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보보안 기업으로 성장했다. V3 백신이 나온지도 25년이 됐다. 안랩은 우리나라가 세계 일등 인터넷 국가가 되는 데 보이지 않는 조력자였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물리적 망분리처럼 보안기업 안랩과 정치인 안철수를 딱 떼놓고 보기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V3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 안랩이 글로벌 보안 SW기업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없애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정치 때문에, 정치에 힘입어 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슬픈 현대사는 과거로만 남아야 한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