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이후 삼성·LG·SK에 이어 상당수 그룹이 IT서비스 계열사를 출범, IT서비스 공유에 나섰다. 대부분 주력 계열사의 IT 인력을 통합, 출범한 IT 계열사는 그룹의 IT셰어드센터 역할을 수행했다. 짧게는 5~6년, 길게는 10여년이 지난 이들 그룹은 그동안 추진해 온 IT 공유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상당수 IT 계열사 지배구조가 그룹 총수 등에 집중돼 있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룹의 IT 전략 환경 변화를 짚어봤다.
◇계열사 규모 확대되면 그룹 차원으로 IT 통합
2000년대 들어 대부분 그룹은 계열사 규모가 확대되면서 그룹 차원의 IT 전략 마련에 나섰다. 대표적인 전략이 IT서비스 공유였다. 계열사별 전산조직과 자원을 통합, IT 계열사로 출범시킨 후 그룹 전체의 정보시스템 관리와 IT 전략을 수립하도록 했다. IT 계열사 대표는 그룹의 최고정보책임자(CIO) 역할을 수행했다. 대표적인 그룹이 GS·동국제강·현대 등이다. 1990년대 그룹 IT 전략을 수립한 그룹들은 IT서비스 공유를 더욱 강화했다.
이렇게 출발한 IT 계열사는 먼저 다른 계열사의 전산자원을 통합했다. 기존에 계열사별로 존재하던 서버 등 정보시스템의 하드웨어를 한 곳으로 모았다. 공통 업무 정보시스템의 운영 효율화를 위해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했다. 전사자원관리(ERP), 공급망관리(SCM), 고객관계관리(CRM) 등 주요 기간시스템은 그룹 차원 표준화 전략을 마련, 주력 계열사부터 적용했다. 주력 계열사의 선진 정보화 역량을 낙후된 비주력 계열사에도 확대 적용하기도 했다.
◇30대 그룹 중 15개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그룹 계열사의 IT셰어드센터 역할을 수행하는 상당수 IT 계열사는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출범 당시 지배구조가 그룹 총수 관계자 지분으로 이뤄져 일감 몰아주기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30대 그룹 중 총수 가족 지분이 30%가 넘는 IT 계열사가 15개에 이른다. 이들 기업은 계열사를 통한 시스템통합(SI) 등의 사업 비율을 최소화해야 한다.
문제는 그동안 이들 기업 중 대부분은 대외사업보다 그룹 계열사 지원에 중점에 뒀다는 것이다. 단순히 계열사의 SI와 시스템관리(SM) 사업을 수행하는 차원이 아니라, 비즈니스 애널리틱스(BA) 조직으로 계열사 현업에게 정보화 기반 경쟁력 제고 방안을 제시하는 역량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도 계열사 지원을 줄이고 대외사업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한 IT 계열사 대표는 “대외사업은 일체 하지 않고 계열사 정보화만을 지원하는 것이 설립 목표였다”며 “이제는 이러한 게 어려워진 이상 그룹 IT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 IT 전략 수정 방안 고민 깊어
현재 상당수 그룹은 이렇다 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일부 대외사업을 시작하거나 확대해 매출을 늘려, 내부거래 비율을 낮추려고 하지만 당장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여년 동안 추진해온 그룹 IT 전략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외에도 그룹 규모가 커지면서 IT 계열사가 모든 계열사를 책임지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삼성·LG·SK그룹은 이미 상당부분 계열사별로 자체 정보화 기획과 사업을 수행한다. 정보화를 지원하는 인력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 비즈니스 환경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정보화를 지원받는 계열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열사 간에 신뢰가 확보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안으로 IT 계열사의 역할을 SM으로만 한정하는 안이 제시된다. 정보화 기획은 해당 계열사 자체적으로, 사업수행은 경쟁 입찰로 외부사업자가 맡도록 한다는 것이다. 금융그룹 IT 계열사들이 대부분 이 같은 형태로 운영된다. 또 다른 IT 계열사 대표는 “해당 IT 계열사들이 이렇다 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대부분 대외사업만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수익성 악화로 그룹 정보화 품질이 낙후될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30대 그룹 중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IT서비스기업 현황
자료:CEO스코어, 전자공시시스템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