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창백한 푸른 점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 독트린,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
창백한 푸른 점

우주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창백한 푸른 점`의 일부다. 창백한 푸른 점은 나사(NASA)가 우주로 쏘아올린 무인탐사선 보이저1호에서 보내온 지구 사진을 보고 칼 세이건이 붙여준 지구의 별명이다. 창백한 푸른 점에서 칼 세이건은 태양계와 지구 사진을 바탕으로 우주의 탄생과 행성 간의 긴 역사를 기록했다. 광활한 우주를 때로는 세밀하게 때로는 낭만적으로 그려낸 이 책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두운 밤 너머를 상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블이 됐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은 많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젊은 문학도에게도 거대한 영감의 지도나 마찬가지다.

과학과 문학은 얼핏 보기엔 서로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는 영역으로 보인다. 우리가 흔히 공대생과 인문대생의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과학자 역시 창의적 상상력 없이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으며, 소설가도 과학적 사고방식 없이는 문학작품을 그럴듯하게 쓸 수 없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김연수는 과학적 글쓰기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가다. `굳빠이이상`이나 `밤은 노래한다` 같은 대표작은 역사적 사실이나 기록에서 영감을 얻어 인물과 삶과 사고의 흐름을 추적해나가면서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오래된 문헌에서 단서를 찾아내 소설 속 주인공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어둠 너머를 상상할 수 없었던 보통 사람들에게 우주의 비밀을 알려주었던 칼 세이건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된 존재의 흔적을 읽고, 상상한다. 일필휘지로 예술작품을 써나간다는 생각과 달리 소설을 쓰는 과정은 오히려 실험을 거듭하는 연역적 추론과정과 비슷하다.

외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위로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거대한 밤하늘을 보면 우리가 겪는 슬픔이나 고통은 길고 긴 지구 역사의 일부로 아주 작게 느껴진다. 소년시절 천문학자를 꿈꿨던 김연수는 성장소설 `원더보이`에서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저 창백한 푸른 점의 문장을 소설가 김연수의 낭독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음악과 함께 칼 세이건의 저 문장을 낭독하며, 우주공간의 모습을 큰 스크린에 비춰주었다. 나즈막한 목소리가 음악과 함께 마치 아득한 별에서 들려오는 메시지처럼 공연장에 울러퍼졌다.

과학자와 소설가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창백한 푸른 점에는 사람이 산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