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화학물질관리법, 징벌적 과징금이 최선인가

불가항력일까. 요즘 산업현장에서 잇따라 인명을 앗아간 대형 사고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지난 1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전기로 보수작업을 하던 근로자 5명이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서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지난 7일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정부가 사고 줄이기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시점에서 발생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ET칼럼]화학물질관리법, 징벌적 과징금이 최선인가

유해 화학물질 사고는 올해 들어서만 대형공장에서 10건 가깝게 일어났다. 연초에 경북 상주산업단지 웅진폴리실리콘 공장에서 200여톤의 염산이 누출돼 주민이 대피했다. 이 공장은 사고 2개월 만에 폐업했다. 지난 3월에는 구미산업단지에서 LG실트론 불산 혼합액 누출사고를 비롯해 구미케미칼 염소가스 누출사고, 한국광유 옥외 저장탱크 폭발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지역 주민의 불안을 증폭했다. 구미산단에서는 작년 9월에도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해 5명이 숨졌고 주변 농공단지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3월에는 여수국가산업단지 대림산업 화학공장에서 폭발로 6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친 사고가 있었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는 넉 달 만에 같은 사고가 재발했다. 지난 1월 불산이 누출돼 작업하던 협력업체 직원 한 명이 숨지고 네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 2일에 같은 장소에서 불산이 누출돼 근로자 3명이 부상했다. 1월 사고 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직접 나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사고 재발을 막지 못했다. 이 사고는 과징금 조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불꽃 논쟁을 벌이던 유해화학물질관리법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과징금을 매출액의 50%까지 매겨야 한다는 환경부를 설득해 과징금 상한액을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5%까지로 낮추고 추가 인하 논의를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협상이 마무리된 셈이다.

사업장이 하나라면 과징금을 매출액의 5%보다 더 낮춰 2.5%로 했고 위반행위의 종류나 사업규모, 위반 횟수에 따라 금액의 50% 범위에서 가중 또는 경감할 수 있다. 애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6개월 영업정지에 갈음하는 과징금으로 회사 전체 매출 대비 10%까지 물릴 수 있게 한 안 보다 상당히 완화됐다. 하지만 업계는 최종 수정안도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정유기업인 A사 울산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사업장은 지난해 대략 49조원의 매출액과 0.4%인 196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 사업장에서 유해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해 책임이 크다고 밝혀지면 과징금은 부과액은 매출의 5%인 2조4500억원까지 물릴 수 있다. 영업이익은 고사하고 한 순간에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화학물질 유출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석유화학업종의 영업이익률은 3.3% 수준임을 감안할 때 매출액 대비 5%인 과징금은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국내 기업이 정상적인 기업경영활동을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기업도 폭탄 과징금이라며 엄살만 부릴 때가 아니다. 올해 들어 발생한 사고 건수만 10건을 넘었고 지난 7년치를 합하면 120건에 이른다. 사고는 전체의 30%가 시설노후로 일어났고 작업 부주의, 운송사고 등이 뒤를 이었다. 화학물질 사고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노후 시설을 보수하고 안전이 화학물질 취급자의 몸에 밸 수 있도록 철저하게 교육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이다. 불산이나 염산은 전자제품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성물질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자와 기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아무리 급해도 안전조치는 필수다. 번거롭고 귀찮더라고 안전 매뉴얼에 충실한 우직함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자.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