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세계 주요 거점을 방문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후쿠다보고서(삼성 제품의 문제점과 업무 개선이 더딘 것을 지적한 보고서)`를 보게 된다.
보고서에는 회사가 양적 목표에만 급급한 나머지 장기적 성장전략과 부가가치 창출, 시너지 같은 질적 요인들은 소홀이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삼성에는 실질보다는 외형을 더 중시하고 일선 경영진은 전년보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하는가에만 몰입된 문화가 팽배했다.
이 회장은 삼성이 변화와 위기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만 빠져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삼성 제품은 동남아 등에서는 성공을 거뒀지만 미국, 일본 등 선진시장에서는 여전히 저가품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이런 수준으로는 세계 초일류기업은 고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경영을 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비장한 각오로 경영진과 해외 주재원을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로 불러모았다. 새로운 삼성을 만드는 첫 회의였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삼성 신경영의 선언이 이때 나왔다.
핵심은 `질`로의 전환이다. 양적 팽창과 체질, 제도, 업무관행을 모두 버리고 질 위주로 철저한 변화를 주문하는 게 골자다. 신경영 선언은 초일류 삼성을 만들기 위한 변화의 방향과 전략, 목표를 제시한 일종의 출발명령이었다. 변화를 읽지 못하면 기회를 놓치고 영원한 2류, 3류가 된다는 고민으로 이 회장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변화의 선두에 나섰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해외 간담회는 68일 800여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당시 논의된 내용을 풀어쓰면 A4용지 8500매에 달한다고 한다. 이 회장은 당식 런던·오사카·후쿠오카·도쿄 등을 오가며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접 자신의 뜻을 전파하며 삼성의 혁신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이 회장은 평소 남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판단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삼성 신경영과 관련해서는 이 회장이 직접 나서 열변을 토하고 강력한 변화를 직접 주도했다.
당시 그는 “내 말은 `양`과 `질`의 비중을 5:5나 3:7로 하자는 게 아니라 아예 0:10으로 바꾸자는 것”이라며 “질을 위해서라면 양을 희생해도 좋고, 경영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일부 공장의 생산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저항도 있었다. `판매량을 무시하고 품질만 강조하면 자칫 매출 하락의 요인이 된다`거나 `아직 삼성 기술력으로는 글로벌 대기업처럼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내부에서 돌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초일류 삼성 도약`에 대한 의지에서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신경영 선언`은 삼성 일류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업무방식에 혁신을 일으켰다. 이 회장은 지난 1995년 삼성은 구미 운동장에 무선전화기와 키폰 등 15만대의 화형식까지 지시했다. 품질 위주의 경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선보인 대표적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애니콜`과 `갤럭시`로 글로벌 모바일 초일류기업이 된 삼성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대강 만들어 현재의 시장을 유지하려 했다면 지금의 삼성 스마트폰 역시 2, 3류가 됐거나 시대에 뒤쳐졌을 수도 있다.
삼성그룹의 한 사장은 “당시 회장 말씀이 어떤 뜻인지 이해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20년이 지나 보면 당시 했던 말과 약속은 대부분 지켜졌다”며 “세계 초일류 삼성이 어느정도 달성된 것은 물론, 시장상황 또한 현실이 돼 있는 게 많다”고 말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