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자동차·조선 등 제조업은 세계 시장을 호령하며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힘으로 성장했다. 특히 전자산업은 휴대폰·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며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제조업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저성장 국면, 엔저 등 불확실한 여건이 상존하는데다 우리 제조업 가치사슬의 취약함 때문이다. 공정과 부품 기술까지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제조업의 최후방에 자리잡은 소재산업은 뒤처져 있다. 소재의 혁신 없이 더는 제조업의 발전을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 소재산업의 허약한 체질은 큰 난관이다.
방향은 두 가지다. 국내 소재산업을 키우기 위해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하는 동시에 글로벌 소재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전자신문은 이 가운데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왔던 글로벌 소재기업들과의 협력을 적극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지난 석 달여간 해외 탐방취재 기사를 연속 보도했다. 국내 제조업을 흔들림 없는 세계 일류로 올려 놓기 위한 방안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최고 수준의 소재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인지, 우리 제조업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미국·독일·벨기에·일본 등 글로벌 소재기업의 본사에서 생산·연구 현장을 취재하고 최고기술책임자와 경영책임자를 인터뷰했다.
◇글로벌 소재기업들의 성공 비결
전자신문은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미국 스리엠·다우코닝·코닝·다우케미컬, 독일 머크·바스프·바커, 벨기에 유미코어, 일본 TOK공업·도레이·스미토모화학 세계 대표 소재기업을 취재했다. 매주 1회씩 1개면에 걸쳐 글로벌기업의 사업 전략을 소개하고 한국과 협력 현황도 전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기초부터 100년 넘게 다져온 기술력이 첫 번째다. 지난 1668년 천사약국으로 출발한 독일 머크는 전자 분야에서는 `액정`으로 유명하다. 이 액정은 125년 전 머크가 처음 개발한 기술로 LCD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중요한 소재다.
유리소재기업 코닝은 지난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필라멘트의 덮개를 생산하기 시작하며 산업용 유리에 손을 댔다. 원재료를 섭씨 1000도 이상 용광로에서 녹인 뒤 아래로 떨어뜨리는 코닝만의 특화 기술이 고품질 유리 기술의 비결이다.
글로벌 소재기업들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끊임없는 혁신이다. 발굴한 기초기술을 응용하고 융합해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이들의 저력이었다.
스리엠은 포스트잇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전체 소재사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46개 기술 플랫폼을 서로 융합해 1만7000여종에 달하는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100년 넘게 축적해 온 필름(Fi), 디스플레이(Di), 세라믹(Ce), 연마재(Ab), 나노기술(Nt) 등 46개 기술을 새로운 제품에 응축하는 시스템이 스리엠의 힘이다.
글로벌 소재기업들을 이야기할 때 협업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소재사업 특성상 파생상품이 워낙 많은 이들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면 언제나 `협업`을 떠올렸다. 기업 안팎에서 최적의 파트너를 찾는 것이 이들이 먼저 하는 일이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의 가장 큰 역할도 여러 가지 기술이 융·복합될 수 있도록 내부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1897년 표백제로 시작한 다우케미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다른 회사 기술을 적극적으로 접목해 신시장을 창출해 냈다. 실리콘을 개발하기 위해 코닝과 손잡고 다우코닝을 만들었으며, 전자재료사업은 지난 2008년 롬앤드하스를 인수하면서 진출했다.
세계 최대 화학회사 바스프의 근간도 협업에 있었다. 바스프는 페어분트(통합 생산체계)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거대한 단지를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R&D에서도 서로 다른 조직의 협업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빈센트 리우 부사장은 “R&D를 기획할 때 각 파트에서 전문가들부터 찾는다”고 말했다.
스리엠은 평가 보상 시스템에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다른 프로젝트를 연구한 데 대한 포상 체계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일본 기업들만의 `완벽함`은 일본 소재산업을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놓은 힘이다. 소재사업의 경쟁력은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봤다. 도쿄오카(TOK)공업은 균일한 특성을 구현한 포토레지스트터를 개발해 시장을 선점했던 미국 기업보다 앞설 수 있었다. 스미토모화학 역시 필름 코팅 기술 등에서 세계적인 품질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검사공정에 공을 들였다. 불량품을 찾아내고 공정을 개선해서 수율을 향상시키는 일본 기업들의 노력과 노하우는 따라잡기 쉽지 않아 보였다.
◇사람, 환경을 생각한다
100년 넘게 성장해 온 글로벌 소재기업들. 그들의 미래는 어떨까. 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서 기자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인적 자원을 최고의 자산으로 생각했다. 특히 유럽 소재기업들에서는 그 회사의 일원이 되면 평생을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역사가 깊은 머크나 바스프는 대를 이어 그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는 예가 많았다. 실적이 나빠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때면 임시직으로 돌리거나 협력회사 직원으로 파견했다, 실적이 호전되면 돌아오도록 했다. 유럽은 정년퇴직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했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도 임원급은 최소 30년, 직원도 15년 이상 재직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스리엠, 다우코닝, 코닝, TOK, 도레이 CTO는 모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근속했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야 경쟁력 있는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방증이다.
또 글로벌 소재기업들은 친환경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고 있었다. 벨기에의 유미코어는 재활용으로 명성을 떨치는 기업이다. 폐기된 전자제품에서 금속을 뽑아내고 정제한다. 특히 배터리 재활용사업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에는 태양전지 소재, 이차전지 소재 등 첨단 에너지 소재 개발에 주력하면서 전체 영업이익의 50%를 환경 기술에서 얻는다.
바스프는 전력 소모와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전사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바커도 신재생 에너지에서 미래를 모색 중이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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