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2013년 `아Q정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갑을 논쟁`이 한풀 꺾인 모양세다. 빨리 끓고 빨리 식는 사회 전반의 성향도 있겠지만, 우리 내면에 자리한 나 스스로의 `갑` 성향이 논쟁 확산을 무의식적으로 배척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만난 경제단체 부회장은 택시기사를 예로 들었다. 택시기사는 회사와 관계나 고객 등에 있어 을의 위치에 있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12시 전후 종로나 강남역 인근의 택시기사는 갑으로 돌변한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모든 선택권은 반짝 특수를 위해 달리는 그들에게 존재한다.

택시기사 뿐이 아니다. 귀족에 비유되는 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에 있어 갑으로 행세한다. 단편적 사례지만 우리사회에 `항상 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항상 갑도 없다. 이런 갑과 을의 성향을 가진 우리는 자신의 편리에 따라 그 위치를 넘나든다.

최근 갑의 횡포에 대한 사회 전반의 질타는 `을의 반란`으로까지 치부되지만, 이 또한 시기와 상황에 편승한 을의 탈을 쓴 갑의 무력시위로 변질될 수 있다.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루쉰의 소설 `아Q정전`에 등장하는 최하층 날품팔이 아Q는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전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스스로 신해혁명의 주체인 갑처럼 행세하지만, 결국 도둑으로 몰려 싱겁게 총살당한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한창이다. 경제민주화는 갑의 것을 을이 약탈하는 행위가 아닌 공생개념이다. 그동안 뒤틀려 있던 갑의 우월적 지위를 견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전반이 갑의 위치일 때 을과 함께 하지 않으면, 나부터 싱겁게 죽어간 아Q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