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재·부품 산업 육성을 위해 대기업간 교차구매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반성장지수를 평가할 때 교차구매 항목을 신설하고, 여러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다.
업계는 이번 정부 대책이 실효성 없는 공염불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관례를 볼때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폐쇄적인 속성상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소재·부품 교차구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0년이 넘었다. 정부가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현실적인 정책은 드물었다. 정부 주도로 대기업간 합의를 이끌어낸 사례도 있다. 지난 2007년 삼성·LG 양사는 LCD 패널을 교차구매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협의서는 휴짓조각이 됐다. 장비·재료 공동 성능 평가 사업도 유명무실해졌다.
대기업들이 소재·부품 교차구매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공급 부족 때문이다. 소재·부품 협력사가 경쟁 세트업체와 거래하면, 공급 부족 사태 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조달 가격도 치솟아 세트 원가구조에 부담을 준다. 반면 협력사가 자사에 종속돼 있는 경우 적기에 싼 가격으로 소재·부품을 조달할 수 있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도 유리하다. 소재·부품 협력사와 사전에 협의하면 조달 물량을 미리 확보할 수 있다.
산업계 전문가들은 소재·부품 교차구매를 활성화하려면 세트 대기업이 자사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키아·블랙베리 등 해외 기업은 어려워져도 협력사에 손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들 기업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리면서 실적 부진을 겪었지만, 협력사들은 건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특정 대기업 의존도가 높아지면 성장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특허나 인력 등 핵심 자산을 탈취당할 수도 있다”며 “기술력을 기반으로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적극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소재·부품 기업들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소재·부품 업체의 대기업 종속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재계 라이벌인 미쓰비시와 미쓰이는 경쟁 협력사 제품을 거의 구매하지 않았다. 그러나 약 15년 전부터 이런 풍조가 급속도로 사라졌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소재·부품 업체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일본 소재·부품 업체들은 해외 기업과 거래하면서 자국 기업 의존도를 줄였고, 시장 확대와 원료 수급 안정화를 위해 해외 생산기반 확대에도 적극 나섰다”며 “우리나라 소재·부품 기업도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외형 성장을 추진한다면 일본처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