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거침없는 전기사용

우리는 왜 전력빈곤에 시달리나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되면서 발전설비를 많이 건설한다고 우려하던 것이 얼마 전이다. 최근에는 신고리 원전 3호기 상업운전을 앞두고 밀양 송전탑 문제가 시끄럽다. 전원설비 증설로 인한 잡음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블랙아웃을 걱정하고 있다.

[이슈분석]거침없는 전기사용

[이슈분석]거침없는 전기사용

“순환정전 사태가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코미디입니다.” 한 전력산업 종사자의 말이다.

순환정전 이후 공급력 확대를 위해 발전소를 조기 준공하고 여러 대책을 마련했음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늘어난 발전소만큼 수요도 늘었기 때문이다. 올여름 전력위기의 단초는 분명 원전이 제공했지만 전력위기가 비단 이번만은 아니라는 점에 늘고만 있는 수요도 상당부문 책임이 있다.

◇순환정전 때보다 원전 4기 분량 전력 더 써

현재까지 기록된 올해 최대 전력피크는 7652만㎾다. 순환정전 당해 연도인 2011년 기록인 7219만㎾보다 400만㎾가 더 늘었다. 발전소로 따지면 불과 2년만에 원전 4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더 쓰고 있는 셈이다. 발전소 증설만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속도다.

전력수요 증가는 경제성장률과 관련이 깊다. 특히 제철,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등 제조산업 중심으로 편중된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생산량 증대가 곧 전력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국민소득 증가로 과거에 비해 개인이 사용하는 전자기기의 수가 급격히 늘은 것도 전력수요 증가를 부추겼다. TV·냉장고·PC 등으로 대표되던 일반 가전제품은 에어컨·전자레인지·노트북·스마트폰·셋톱박스 등으로 다양화됐다. 여기에 급속도로 진행되는 전기화는 전력난을 부채질했다.

전기화는 각종 기기들의 동력원을 전력으로 바꾸는 등 생활 전반에서 전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열기다. 등유와 가스 등 열을 내기 위한 다른 수단이 있지만 사용의 편리성과 안전, 비용 때문에 전기를 사용하는 난방기기의 수요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모든 생활을 전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택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회 전반으로 에너지 절약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절전대책을 발표하고 각계각층에서 동참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지금 이순간도 밖에는 많은 상가들이 냉방기를 가동한 채 문을 열어놓고 영업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 조명과 모니터가 켜져있기 일쑤다. 매번 여름과 겨울 때마다 절전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다수의 동참을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전기는 이미 절약의 대상보다는 플러그를 꽂으면 알아서 나오는 일상적인 재화가 된지 오래다.

◇에너지 절약 분위기보다는 명분

우리나라의 전력 과소비 문화는 2년 전 순환정전을 회상하면 여실히 드러난다. 2011년 9월 15일 추석연휴 이후 때늦은 무더위로 전국 낮 기온이 30도를 넘자 순환정전을 시행했다. 거리 신호등이 꺼지고 엘리베이터에 시민이 갇히고 공장이 멈추면서 전력위기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다음날인 16일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절전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렸지만 오히려 최대전력은 6728만㎾에서 6740만㎾로 증가했다.

절전을 위한 분위기는 과거에 비해 한층 개선됐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는 아이돌스타가 절전을 권유하고 기업들과 시민단체들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캠페인이 실질적인 국민 동참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분위기 자체는 충분하지만 실질적으로 절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전기요금은 전력수요 증가를 이끄는 대표적인 이유다. 사회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전기화도 낮은 전기요금에서 비롯된다. 가스, 석유보다 이를 원료로 사용해 재생산한 전기요금이 오히려 더 싸니 사용량이 늘 수밖에 없다. 한 여름에 절전을 해서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전기요금 절약과 절전에 동참했다는 자부심 정도다. 상황만 놓고 보면 정부의 절전 호소는 국민들에게 굳이 싼 에너지원을 나두고 불편을 감수하거나 비싼 대체제를 이용하라는 의미다.

과거부터 이어져오던 관행이 절전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빌딩에 밀집된 상가의 경우 전기요금을 관리비로 함께 내는 시스템으로 절전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똑같이 관리비를 내는 상황에서 본인만 문을 닫고 영업해봐야 손님만 빼앗길 뿐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9·15 순환정전 이후 전력태스크포스팀이 전기요금 현실화를 대안으로 제시했고 녹색성장위원회도 새 정부의 과제로 왜곡된 에너지 요금 정상화를 꼽았다. 전력 관계자들은 전기요금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애국심에 의존하는 캠페인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연도별 전력수급 현황

자료=한국전력공사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