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대책, 과거정책 뒤집는 말 바꾸기 대응

석유제품 혼합판매 등 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유가대책이 사실상 과거 정책을 뒤집은 말 바꾸기 대응책이라는 지적이다.

17일 정유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도입했으나 실적이 전무한 석유제품 혼합판매 제도는 과거 주유소상품표시제(폴사인제)를 단순히 뒤집은 제도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1992년 석유제품 품질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주유소 간 경쟁을 유도하고자 주유소상품표시제를 도입했다. 이후 정부는 복수폴사인제, 폴사인제 폐지, 혼합판매 도입까지 반대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정유 업계는 정부가 정책을 뒤집은 이유로 `국제유가` 급등을 꼽는다. 폴사인제 첫 도입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 내외로 낮았다. 원료 값이 싸기 때문에 석유제품 소비자가격 인상 걱정이 없었고 극성을 부리는 가짜석유와 섞어 팔기 등에 대응할 품질 관리가 중요했다. 품질관리 책임을 정유사에 지우려 폴 사인제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정책은 이전 정책과 반대방향으로 진행됐다. ℓ당 2000원을 육박하는 소비자가격 급등에 정부는 가격을 낮추는 방안으로 혼합판매 제도를 도입했다.

과거 폴 사인제 이전 혼합판매 시절을 거친 정유·주유소 업계에는 이미 브랜드와 품질 가치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다시 회기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혼합판매 제도가 도입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전환 주유소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정유 업계는 또 국제유가를 기준으로 정유사에 공급가격 인하 압박을 가하는 것도 말 바꾸기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 석유제품가격은 국제가격에 연동하는데 정부가 밝히는 유류세 인하 기준이 제품가격이 아닌 국제유가 배럴당 130달러로 서로 다르다.

지난 1997년 유가 자유화 당시 정유사는 국제유가를 기준으로 국내 석유제품가격을 책정했다. 2001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를 훌쩍 넘어서며 상승하자 정부는 국내 석유제품가격 기준을 국제유가에서 제품가격으로 변경했다. 이후 지금까지 국내 석유제품가격은 국제가격, 환율, 국내 유통 관련 제반 비용 및 국내 시장여건 등이 반영돼 결정된다.

그런데 정부는 2009년 국내가격과 국제가격의 비대칭성이 발견되고 오히려 국제원유가와 대칭성을 이루고 있다는 이유로 유류세 인하 기준을 국제유가로 설정했다. 기준이 국제유가→국제제품가격→다시 국제유가 순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유가대책은 국제유가 변동에 따른 국내 영향에 따라 기존에 시행했던 정책을 뒤집은 것”이라며 “일관성 없는 정책 시행으로 사업 추진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