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자동차 시장이 올해 하반기를 시작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부의 보급지원 대상이 일반인으로 확대되는데 이어 내년 초까지 구매 가능한 차량도 1종에서 5종으로 늘어난다. 벌써부터 일부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 선점 경쟁이 일면서 차량 가격도 떨어지는 추세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구매 보조금 지원을 포함하면 기존 가솔린차량 만큼의 충분한 가격경쟁력이 확보됐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전기차종이 늘고 차량가격 역시 부담이 줄었지만 충전인프라 만큼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충전기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이미 설치된 충전기마저 활용이 어렵고 국내 표준 부재로 출시 예정이 차량의 이용 또한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기차를 구매하더라도 길거리에서 방전될 수 있다는 소비자들의 우려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있어도 사용 못하는 충전기
2012년 말 기준, 서울·제주를 중심으로 전국에는 약 1300기의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 전기차도 1100대 이상이 공급됐다. 하지만 정작 충전기 사용은 자유롭지 못하다. 사업주체에 따라 충전기 사용자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운행하다가 인근에 충전기가 있어도 사용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환경부·산업자원통상부·서울시 등과 충전인프라 서비스 업체별로 사용자 호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충전기 서비스 정책이나 과금 등의 관리체계를 각각 다르게 운영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서울시가 4개 서비스 사업자를 선정하고 `전기차 셰어링` 사업을 시작했다. 일반인 대상으로 총 184대의 전기차가 투입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기차 사업이지만 사업자 별로 제각각인 사용자 인증 탓에 충전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운영하는 충전기(169기)와 산업부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용 충전기(190기) 등이 제주도 전역에 운영 중이다. 제주 역시 호환이 되지 않아 사용자 불편이 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우선 제주도 내 380여기의 충전기를 호환시키는 사업에 착수했지만 사업 완료까지 1년이 소요된다. 당장 이달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기차를 보급하지만 원활한 충전 이용까지 1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한번 충전으로 전기차의 운행거리는 100㎞ 안팎이다. 이 때문에 잦은 충전이 요구되지만 충전기가 있어도 사용이 어려워 이대로 상용화할 경우 소비자들의 불편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하반기부터 르노삼성과 GM이 전기차 출시를 앞두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문승일 서울대 교수는 “배터리 성능과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아직 전기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이 많다”며 “전기차와 충전기 규격 통일이 완벽해도 산업화가 쉽지 않는 상황에 이미 설치된 충전기조차도 활용 못하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잠든 충전기 깨우고, 설치 의무화 마련해야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원인은 전기차의 한정된 운행 거리 때문이다. 충전인프라 부족이 전기차 시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충전기 설치는 정부 산하기관이나 지자체에 주로 공급하다보니 대부분 공공시설에 설치됐다. 하지만 정작 충전기는 시설물 지하 주차장이나 안내표시 없이 건물 안쪽에 위치하다보니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다. 더욱이 야간이나 공휴일에는 출입이 제한돼 무용지물이다.
이 같이 공공시설물의 충전기를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외부로 이전하는 방안과 아파트 등에는 충전기 구축을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아파트나 공동주택에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주민 합의도 필요하고 구축 장소 선정 등 개인이 나서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애초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에는 장애인 주차시설처럼 충전기 인프라 구축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이용자 일일 운행거리가 평균 50㎞에서 100㎞인 점을 감안하면 가정과 직장에 충전시설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이용자의 불안감은 대체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며 “현재 일부 지자체가 권고사항으로 하는 충전설비 구축을 법규화하고 구청에 설치된 충전기도 밖으로 꺼내어 누구나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올해 신규로 보급하는 충전기부터 사용자 접근이 용이한 대형마트, 공영주차장 등으로 확대시킬 방침이다. 여기에 충전환경 여건에 따라 충전시간이 5시간 이상 소요되는 완속 충전기 수는 줄이면서 20분 전후의 충전이 가능한 급속충전기 위주로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박광칠 환경부 전기차 보급팀장은 “보급사업 초기에 완속 충전기는 차량 1대당 1기를 보급했지만 기관별 차량 대수와 충전환경에 따라 완속 충전기 수는 줄이고 급속충전기 등의 비상 충전인프라를 확대할 것”이라며 “대형마트, 공영주차장 등에 충전기 보급을 확대해 불편함을 최소화 시키겠다”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 붙잡는 충전기 표준
충전기 국내 표준 부재로 하반기 출시예정인 전기차와 충전기 간 규격 호환도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다. 충전 30분 이내의 급속 충전 규격은 일부 완성차 업체별로 달라 케이블 연결 등의 호환이 되지 않는다. 규격이 통일되지 않으면 한 충전소에 3개 이상의 다른 규격의 충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이용자도 불편하지만 인프라 구축 비용도 크게 늘어난다.
기아차 레이는 `직류(DC) 차데모` 방식을, 르노삼성 SM3 Z.E.의 `교류(AC) 3상` 방식을 채용했다. 한국GM과 BMW의 `DC 콤보 타입`은 아직 표준화되지 않았다. 결국 차데모·교류 3상에 직류 콤보까지 3가지 방식이 존재하는 셈이다. 하나의 충전기가 최대 2개 이상의 충전 방식을 채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산업부는 관련 표준을 정하고 이후 환경부는 7월부터 전국 공영주차장과 대영할인매장 주차장을 중심으로 100여기의 충전기를 구축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설치 현장을 선정하고 관련 설계를 마무리해 11월부터 설치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별로 자사의 충전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조율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광칠 팀장은 “올해부터 다수의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 생산에 들어가면서 공공충전인프라 구축이 시급하지만 아직 이를 위한 표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업체 간 조율을 통해 시장 논리대로 문제가 없도록 관련부처와 협의 하겠다”고 말했다.
◆전기차 사용자 전기요금 누진제까지 신경써야 한다
올해 하반기에만 약 300~400대의 전기차가 정부 보조금 지원으로 일반인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환경부는 올해 3곳의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해 100대 이상의 전기차 민간 보급 사업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개별 지자체별로 일반인 대상 전기차 보급을 실시한다. 제주도는 이달부터 도민을 대상으로 190대의 전기차를 보급하며 구매율에 따라 연내 100대 이상 추가할 방침이다. 당진시과 창원시 등도 자체 보급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개인이 구매부터 충전 설비 마련까지 복잡한 절차를 처리하기에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기차는 충전용 전기요금체계가 달라 별도의 계량기 등 한국전력이 정한 수전설비도 갖춰야 한다. 또한 전력 사용이 많을 때 전기요금 누진제를 적용 받기 때문에 정해진 충전기 이외에 가정용 전원사용도 자제해야 한다. 별도 설치되는 가정용 완속(10㎾)충전기는 월 기본료가 2만2300원이지만 가정(저압)내 전기로 충전할 경우 100kWh 이상 사용분부터 최대 10배가 넘는 폭탄 요금이 부과될 수 있다.
충전기 설치는 개인주차장 또는 충전기 설치를 원하는 장소(본인소유)에 가정용 충전기나 스탠드형 완속충전기 중 하나를 선택해 설치할 수 있다. 아파트나 공동주택은 관리사무소나 아파트자치회 등으로부터 충전기 전용주차장 이용을 허용한 설치장소 확인서를 해당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아파트나 공동주택도 기존 한전과 계약된 전력량에 대한 모자분리를 통해 전기차 전용 계량기를 설치한다. 이후 전기공사업체를 통해 충전기와 전원공급 설비 공사를 마친 후 전기안전공사에서 안전점검을 실시한다. 이후 안전 등 문제가 없으면 한전의 해당 계량기를 수령해 전기사용을 인가한 후 충전기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아파트 단지는 충전기 용량에 따라 변압기 용량이 모자라면 계약전력 증설 또는 별도의 변압기와 차단기를 설치해야 하며 한전 계통이 끝나는 전원점(보통 전신주)으로부터 충전기 설치장소 거리에 따라 지중화 공사비 등 200만~2000만원의 공사비가 추가될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충전인프라가 일정규모 이상 확대되기 전까지 다소 복잡한 절차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전기차 선도도시를 중심으로 전기차 민간 보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차량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는 시도 담당과에 전기차 보조금 지급 여부를 사전에 확인한 후 안내에 따라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표]2013년 보급대상 차량가격 및 보조금 지급 계획 (자료 : 환경부·각사)
[표]국내 출시 및 출시 예정인 전기차 급속충전기 현황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