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롤 모델로 핀란드가 회자되면서 십년도 더 지난 이야기가 떠올랐다. 핀란드 혁신 도시 울루에 출장을 다녀온 한 연구원이 전한 말이다. 울루대학 측이 우리 정부 조직도와 과학기술 관련 기관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고 한다. 무리도 아니다. 당시 강소국으로부터 혁신 사례를 배우자며 핀란드로 날아가는 정부와 과학기술계 인사의 출장 행렬이 줄을 이었다. 당시 `혁신`은 오늘의 `창조`만큼이나 가슴 벅찬 신념이었다.
모바일게임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로비오는 지난해 1억9650만 달러 매출을 올렸다. 단 두 개의 게임으로 지난 1분기 1억8000만 달러 매출을 거둔 수퍼셀은 로비오로부터 불과 15분 떨어진 위치에 본사가 있다. 포스트 노키아 시대를 표방하는 핀란드 스타트업 생태계의 대표 얼굴이다.
노키아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핀란드를 스타트업 천국으로 만든 것은 아이디어와 창의력,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뚝심 있는 지원 정책과 `순위 없는 성적표`로 대변되는 공교육이다. 핀란드가 이처럼 경제 체질을 싹 바꾼 10년 동안 우리나라도 `혁신`에서 `창조`로 구호를 바꾸었다.
창조경제란 요란한 구호를 앞세워 누구에게 배우고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싸이가 `강남스타일`에 이어 `젠틀맨`을 발표하고 경이로운 성공을 이어가는 이유는 창조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마땅히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할 대상에 저작권료를 지급한 것, 실패가 두렵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조를 실천한 것이고 대중은 이에 열광한다. 창조란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부 연구개발(R&D)사업 성과는 혁신이니 실용이니 하는 구호에 매달려 있을 때 나온 것이 아니다. 선진 7개국 수준의 과학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1992년 선도기술개발사업(G7프로젝트)이 시작됐다. 가시적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는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외피 대신 꾸준한 투자로 10년을 감내했다.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큰 규모의 연구비, 민간전문가 사업전담 관리제, 범부처 연계추진, 기업이 정부 R&D에 투자하고 참여하는 개방형시스템 등 완전히 새로운 R&D 환경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줬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반도체 등 우리 대표 제품과 경쟁력이 탄생했다.
이제 창조에 대한 말잔치와 생각을 잠시 접어두자. 화려한 수사 없이도 우리는 잘 해 오지 않았던가. 과학기술계는 20년 전의 열정을 모아 조용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창조경제에 맞는 `포스트 G7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할 때다. 국가창조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이끌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바탕으로 부처간 연계를 넘어 융합해야 한다. 기초·응용·개발연구가 동시에 이뤄지고 연결되며 산·학·연·정이 함께 만들어 산업경제 패러다임을 바꿀 도전적인 `창조적 기술개발사업(Creativity7 프로젝트)`이 시급하다.
G7프로젝트를 시작한 1992년 당시, 우리나라 IMD 국가경쟁력은 27위였다. 2013년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 마틴번영연구소에서 발표하는 국제창조지수 역시 27위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G7프로젝트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렸듯, `C7프로젝트`를 발판으로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창조적 자산의 부가가치 창출을 통해 국가창조력을 높이면 된다.
머뭇거림은 곧 경쟁력 상실이다. 이제는 창조경제 논쟁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각 부문별 실천 전략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과기계가 머리를 맞대고 국가 미래를 함께 고민해 과학기술이 창조경제의 한 축이 아닌 창조경제의 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20년 뒤 우리 후배들에게 당당할 수 있다.
박구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 parkgus@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