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인간의 후각를 넘어라 `전자코`

# 한 중학교에서 우등생이면서 성격도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베리가 방과 후에 화장실에서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CSI는 현장을 조사하던 중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던 베리가 힘없고 약한 급우들을 잔인하게 괴롭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찰은 이 사건이 베리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학생들이 복수심에 벌인 범죄일 것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학생들은 모두 알리바이 뚜렷한 까닭에 혐의를 벗는다.

[과학, 문화로 읽다]인간의 후각를 넘어라 `전자코`

CSI의 반장은 테스트용으로 받은 새 기계가 이 사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재수사에 들어간다. 그 기계는 일종의 `전자코`로 냄새 속에 포함된 화학물질을 분석해 주는 장치다. 반장은 이 기계를 이용해 범행 현장인 남자 화장실을 조사하던 중 여성용 향수가 공기 중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전자코 기계의 성능은 놀라워서 그 향수가 어느 회사의 브랜드 제품인지도 밝혀낼 정도다. 흔치 않은 브랜드의 향수를 갖고 있던 학생을 잡았다.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CSI 라스베이거스 시즌 2의 이 에피소드에는 `냄새`가 사건 해결에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여성인 범인은 남자 화장실에 당당하게 들어가 베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냄새가 남아있었고 이를 감지한 `전자코(electronic nose)`가 찾아낸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감 중 일상생활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감각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의 순이다. 그 중에서도 후각의 동작 원리는 코의 점막 상피 세포에 단백질 등이 냄새 물질과 결합해 사구체와 신경계를 거쳐 뇌에 전달하게 된다. 전자코의 원리 또한 특정 향기 또는 냄새 성분을 센서 어레이를 이용해 화학적 신호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한 후 인공 신경망 등을 활용해 패턴을 인식한 후 감지한다. 이렇듯 전자코는 인간의 후각 시스템을 모방한 전자적 장치다. 인간의 코가 연속적으로 다른 냄새를 맡기 못하는 단점을 보완해 기계적으로 냄새를 맡고, 인체에 해로운 냄새도 맡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자코 기술은 1987년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이후 1990년대 말 센서 어레이를 이용해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소개된 괄목할 만한 연구는 지난 2011년에는 펜실베니아대학 찰리 존슨 교수팀은 후각용 수용체 단백질과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지터를 결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연구의 최종 목표는 인공 전자 소자를 이용하여 생체 분자의 시스템이 감지하는 여러 신호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거였다. 이는 전자코 개발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CSI가 활용한 전자코는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될 전망이다. 쓰레기 매립지 및 폐수 처리 설비에서 발생하는 유해 가스를 감지하는 데 사용될 수 있어 녹색성장 기술로도 여겨진다. NASA에서는 국제우주정거장 승무원의 건강과 안정을 위해 전자코를 활용해 공기 중에 유해한 물질을 모니터링한다. 외과 의사들은 암에 걸린 조직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 냄새를 잘 맡는다는 의미의 `개코`라는 말이 없어지고 전자코라는 단어가 쓰일 날이 머지않았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