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창조경제 구현에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 바로 `인수합병(M&A)`을 통해서다. 대기업 M&A는 자체 경쟁력 확보로도 의미가 있지만 선순환 창업·성장 생태계 조성에 일조한다.
창업성장 생태계란 개인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기업(벤처)을 창업해 외부 자금으로 상용화해 성장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자금회수(Exit)다. 소요된 막대한 자금을 적절한 시점에 회수해야 한다. 이것이 막히면 벤처 수익성이 악화하고 근근이 버티는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전락한다. 일부는 폐업해 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진다.
자금회수 수단으로는 `공개시장 상장(IPO)`과 `인수합병(M&A)`이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비중으로 볼 때는 M&A가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IPO는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될 시점에만 가능하지만 M&A는 가능성·잠재력만으로도 이뤄진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애플·구글·페이스북 등이 어마어마한 자금으로 생소한 벤처기업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미국에서 벤처캐피털 자금회수 수단을 보면 M&A가 90.6%(지난해 건수기준)로 상장(IPO)의 9.4%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나라 벤처캐피털 M&A 통계는 수치를 뽑기가 민망할 정도로 낮다. M&A 시장이 열리지 않으면 모든 기업은 자금회수 수단으로 IPO만 바라본다. 이는 자금회수 실패와 과잉 IPO 경쟁 등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선순환 창업·성장 생태계 파괴된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가 오히려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M&A에서 시너지가 큰 곳이 대기업이다. 막대한 자금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성공사례는 또 다른 창업 활성화의 단초가 된다. 대학생 등 잠재 창업자에게 그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도록 이끈다. 일자리가 부족해 창업으로 내몰리는 막연한 `창직 권장`과는 다르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이스라엘과 비교해 우리나라에 없는 게 대기업 M&A”라며 “이스라엘에서는 전 세계 유태계 자본이 벤처에 투자해 글로벌 시장을 열어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도 “GE는 지난 10년간 500개 가량의 벤처를 인수하며 시장 지배적 사업자 자리를 유지했다”며 “대기업이 우수한 창업기업을 인수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수많은 벤처·스타트업은 제대로 가치만 인정한다면 매각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부정적 인식 전환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민화 교수는 “언론에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고,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좋은 사례를 적극 알리는 방법 정도만이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기획정책팀장은 “대기업이 M&A를 하면 여론이 안 좋아져 오히려 실패하는 `승자의 저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M&A를 나쁘게 보는 인식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대기업의 벤처 M&A 효과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