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변해도 선풍기는 여름을 나기 위한 필수 가전이며, 에어컨의 냉방 성능을 보조할 수 있는 제품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편에서는 수백만원대 에어컨과 비교해 수만원대 선풍기는 성장세가 주춤해진 이른바 `사양산업`이란 꼬리표도 남아 있다. 선풍기 전문기업 한일전기의 역발상은 거기서 시작했다. 에어컨을 이기려면 더 센 바람을 내야 할까.

국내 선풍기 시장은 연간 350만~400만대가 판매되는 규모다. 선두기업인 한일전기는 100만대 이상의 선풍기를 판매한다. 대부분 6, 7월에 팔린다. 한일전기가 선풍기 판매로만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간 400억원대다.
24일 박찬진 한일전기 영업본부장(전무)은 “소비자는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면서 “선풍기도 변해야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령별, 용도별, 계절별, 계층별 아이디어를 제품에 입혀 에어컨과는 다른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전기는 여름에도 감기걱정에 선풍기조차 마음대로 켤 수 없는 영유아 가정을 타깃으로 한 `아기바람` 선풍기를 내놨다.
“몇 년 전에 초미풍 선풍기를 출시하고, 인터넷에서 아기 엄마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어요. 아기를 위해 이런 제품이 필요했는데 그동안 없었다는 것입니다.”
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일전기는 모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헬로키티, 미피 등 캐릭터를 이용해 `베이비 한일`이라는 영유아 전용 생활가전 제품을 개발한 경험도 보태졌다.
아기바람 선풍기의 `초초미풍`은 나뭇잎이 살짝 흔들릴 정도의 실바람과 비슷한 풍속인 0.65m/s 정도의 약한 바람을 제공한다. 일반 선풍기의 제일 약한 설정인 `미풍`의 절반 수준이며, 자사의 `초미풍`의 바람 세기보다도 20% 더 약하다. 피부수분 증발량도 적기 때문에 저체온증을 유발할 가능성도 낮다.
박 본부장은 “선풍기 모터의 기본 출력이 있기 때문에 더 센 바람을 내는 것보다 더 약한 바람을 내면서 소음은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아기바람 선풍기의 초초미풍 기술은 특허 출원 및 등록을 완료하고, 지난달에는 한국표준협회가 수여하는 `2013 대한민국 신기술 혁신 대상`도 받았다.
박 본부장은 “선풍기의 핵심기술인 모터는 물론이고 연간 판매량의 절반인 50만대 이상은 국내에서 제조한다는 원칙이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됐다”고 전했다. 한일전기는 IMF 위기에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꿋꿋이 국내 제조기반을 지켰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바람과 태양의 경쟁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차고 강한 바람이 아니라 태양의 뜨거운 햇살이었다. 한일전기는 더 센 바람보다 더 약한 바람을 개발해 여름 가전의 새 장을 열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