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26만원. 이번에 시승한 제네시스의 몸값이다. BH 380모델 중에서도 가장 비싼 프레스티지 스페셜 트림(6,394만원)에 116만원짜리 리어 모니터와 스마트크루즈컨트롤을 추가한, 그야말로 ‘최고급형’ 제네시스다.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차를 살펴봤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인피니티 M, 렉서스 GS 같은 쟁쟁한 경쟁 차종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이들과 비교했을 때 제네시스의 매력은 뭘까. ‘가격? 편의품목? 성능?’... 살짝 고민되는 부분이다. 물론,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를 출시하기 전엔 딱히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만한 차가 없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분명 놀라운 발전이긴 하다. 인정한다.
브랜드 선호도와 주행 감성 등 주관적 부분을 빼고, 단순히 비슷한 값의 제품끼리 비교했을 땐 제네시스가 성능이나 안전/편의장비에서 앞선다. 뒷바퀴굴림방식 제네시스 BH380은 람다 3.8리터 GDI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334마력, 최대토크 40.3kg.m의 성능을 낸다. 수치상으론 이미 동급 수입차들을 넘어섰다.
또한 주행 상황에 맞게 알아서 빛을 비춰주는 풀 어댑티브(Full AFLS) LED 헤드램프, 앞차와 거리를 스스로 조절해주는 SCC, 달릴 때 차 높이 조절을 알아서 해 주는 기능, 19인치 휠과 235/45규격 타이어, 위험 상황에서 미리 사고를 대비해 주는 기능, 8개 에어백 등을 충실히 갖췄다. 여기에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뒷좌석에 탄 사람들을 배려한 모니터는 물론, 하나하나 늘어놓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고 다양한 편의장비를 자랑한다.
운전석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니 두 가지 컬러로 마감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요란하지 않고 무난하다. 반짝거리는 요소를 최소화 해 은은히 고급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버튼들도 큼지막해서 만지기 쉬운데, 그만큼 누를 때 느낌이 조금 더 확실했으면 좋겠다.
주행 감성은 어떨까. 다른 회사의 대형차를 타는 40대 후반 남성은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걸러주는 느낌이 조금 애매하다”며 “전반적으로 만족할 만하지만, 시트가 아쉽다”고 했다. 또한 그는 “가죽이 부드럽지 않고, 편안함을 강조키 위해 푹신한 것도 아니고, 혹은 몸에 딱 맞춰지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달릴 때 느낌이 동급 수입차들과 미묘하게 다르다는 주장인데, 이는 서스펜션 세팅과 타이어 규격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대로 젊은 층은 시트가 무난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리고 고속에서 안정감은 생각보다 좋았다. 들뜨지 않고 침착한 편이다. 시속 120km이상에선 자동으로 차 높이를 낮춰주는 에어서스펜션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운전자가 일부러 차 높이를 낮출 순 없어서 아쉽다. 반면,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 차고를 높이는 건 버튼 하나 누르면 된다. 이 상태로 시속 70km이상 주행하면 원래 높이로 돌아온다.
이번엔 최대한 성능을 끌어내며 차를 몰아붙여봤다. 생각보다 잘 버틴다. 스포츠 버튼을 눌러보니 운전대가 묵직해지고, 서스펜션이 단단해진다. 가속할 때 반응도 꽤 좋아진다. 가속할 때 느낌은 폭발적인, 스포츠카의 경쾌한 것과는 다르다. 힘이 느껴지는 가운데, 시속 200km까지 부드럽게 가속된다. 8단 자동변속기는 매끄럽게 실력발휘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스포츠 모드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조금 더 공격적으로 변해도 될 것 같은데, 여전히 얌전했기 때문이다. 속도를 줄일 때 이런 아쉬움은 더 커진다. 보통 수입차들은 스포츠 모드로 놓게 되면 대부분 최대한 힘을 낼 수 있도록 엔진 회전수를 보정해준다. 속도가 줄어들 때 기어를 저단으로 바꾸고 RPM을 높여서 엔진 브레이크 효과와 함께, 운전자가 빠르게 다음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차가 스스로 준비하는 과정이 계속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또한 변속할 때의 엔진 및 배기 사운드도 함께 신경 써서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제네시스는 D레인지와 차이가 없었다. 운전자가 일일이 기어를 조작하며 RPM을 원하는 대로 맞추는 수밖에 없다. 물론, 프로그램 개선으로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가속할 때 느껴지는 쾌감만큼 감속할 때 느낌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첨단 안전장비도 살짝 체험해 봤다. VSM(차체 안정화 관리 시스템)과 IAP(지능형 가속 페달)의 역할이 컸다. 레이더가 주행 방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사고가 예견되면 경고음이 들리면서 가속 페달엔 진동이 느껴진다. 휴대폰처럼 ‘부르르’ 떨리는 게 아니라 ‘탁탁’ 치는 듯한 느낌이다. 이와 함께 안전 벨트가 당겨지며 시트와 몸을 밀착시켜준다. 충돌에 대비하는 듯하다. LDWS(차선이탈경보 시스템)는 운전자가 차선을 바꿀 때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으면 소리와 계기반 가운데 모니터로 안내해 주며,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조는 걸로 여기고 안전벨트를 ‘콱콱콱’ 당겨 운전자의 각성을 요구한다. 페달도 함께 떨린다. 맨 정신에서 벨트가 당겨질 땐 기분이 좋지 않지만, 만약 졸음운전 상황이라면 잠을 깨울 수 있을 것 같다.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자동으로 속도를 유지해 주는 SCC(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시스템은 범위가 더 늘어나면 좋겠다. 일정 구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저속에선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자동으로 풀리는 경우가 있어서다. 완전히 멈춰 설 수 있고, 서행할 때도 작동하면 좋을 것 같다. 정체 구간에서 꽤나 유용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2013 제네시스를 타면서 적잖이 놀랐고, 그만큼 아쉬움도 남았다. 수입 세단들과 견줘도 크게 뒤지는 거 없이, 오히려 앞서는 부분이 많은 탓에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무언가 미묘하게, 2%쯤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를 좋아하고, 여러 차종을 많이 타본 사람 입장에서의 `주관적인` 평가다.
오가며 만난 외국인 사업가들이나, 해외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국산차 중 제네시스를 단연 으뜸으로 꼽는다.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 차를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유가 뭘까? 수입차 브랜드들은 역동, 안전, 실용, 럭셔리 등 각각 특성에 맞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한다. 같은 차종이라도 트림 별로 성격을 달리 해서 소비자들의 개성을 존중해 준다. 그런 면에선 제네시스는 성격이 두루뭉실한 편이다. 좋게 보면 매력이 많은 것이고, 꼬집자면 정체성이 애매모호하다. 물론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만, 잘 만든 제품을 많이 팔려고 고민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이젠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더 커져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자동차의 ‘상품성’은 본질에서 나온다는 점을 보여줬으면 한다.
글, 사진/ 박찬규 RPM9 기자 st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