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 글로벌 시장서 해법을 찾다]<8>전력민영화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국민들 반응은

전기요금 인상은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금기시돼오던 말이다. 하지만 지난 9·15 정전사태 이후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현실화`라는 단어로 전기요금 인상이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다.

영국의 전기요금 고지서는 소비자가 선택한 요금제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이 요금표는 EDF사의 표준형 전기요금제도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전해진 6개월치 전기요금 고지서다. 5개 항목(오른쪽)은 전기요금 구성 비중이다. 이 가운데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저탄소비용이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영국의 전기요금 고지서는 소비자가 선택한 요금제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이 요금표는 EDF사의 표준형 전기요금제도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전해진 6개월치 전기요금 고지서다. 5개 항목(오른쪽)은 전기요금 구성 비중이다. 이 가운데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저탄소비용이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전기요금 인상에서 가장 중요한 명분은 도매요금보다 낮은 소매요금, 해외 대비 현저하게 낮은 요금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본지의 세계 전력거래 시장 기획취재 목적도 각국의 전력민영화에 따른 전기요금 현황과 현지 주민의 반응이었다. 프랑스부터 미국까지 두 달간 4대륙 6개국에 걸친 대장정에서 본지 특별취재팀은 우리가 그동안 전력을 너무 편하게 쓰고 있었다는 생각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반전이라면 해외와의 전기요금 격차가 당초 예상보다 컸다는 점이다.

요금은 비쌌지만 소비자 대부분은 이를 수용하고 있었다. 수용이라는 표현보다는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게 더 정확했다. 연료비 상승, 송전거리 및 설비투자 요인 증가 등 인상 요인이 있으면 전기요금은 올라가고 쓰는 만큼 지불한다는 것이 해외 소비자의 보편적 생각이다.

◇전력도 골라 쓰는 재미(영국)

영국 런던의 4인 가구가 부담하는 월 평균 전기요금은 17만원 수준이다. 소득수준과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럼에도 현지 소비자의 요금 저항감은 예상보다 크지 않다. 다양한 소비자 선택권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6개 전력회사 영업사원이 고객을 직접 찾아 자사 전기 사용을 권한다. 합법적이지는 않지만 영업사원을 접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눈치 빠른 소비자는 판매업체 간 경쟁을 이용한다. 일정 기간 전기를 사용한 뒤 전력회사를 바꾼다.

영국 전력회사가 제공하는 전기요금 제도는 무려 1600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요금제는 월별 기본 사용량을 미리 정해놓고 쓰는 방식이다. 자신이 사용할 월별 전기 사용량을 미리 정해놓고 6개월 뒤 실제 사용량과 비교해 사용료를 지불한다. 6개월 뒤 전력회사의 실제 검침량과 비교해 기준 사용량을 초과하면 상당한 금액을 추가로 납부한다. 따라서 특정 전력회사와 적은 월 사용량으로 계약하고 전기를 사용하다 사용량이 늘어날 시점에 다른 전력회사로 변경한다. 그러면 다시 적은 월 사용량으로 계약할 수 있다. 통상 8개월 정도 사용한 뒤 전력회사를 옮긴다.

영국의 다양한 전기요금 제도만큼이나 전기요금 고지서도 다소 복잡하다. 대체적으로 전기요금 고지서에서 매달 전기요금을 결제하거나 계량기 사용정보를 알려주면 전기요금의 일정액을 감면해준다. 사용자에 부과되는 전기요금은 다섯 항목으로 이뤄진다. 부가세(5%), 저탄소비용(8%), 전력회사운영비(16%), 공급망(23%), 도매전력구입비(48%) 등이 전체 요금을 구성한다.

◇다양한 시장, 시장경제와 독점의 공존(미국)

미국의 소매 전력요금체계는 주정부 정책에 따라 다르다. 뉴욕, 펜실베이니아 등 16개 주는 소매 부문에 경쟁구조를 도입해 다양한 사업자가 다양한 요금제도로 영업을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처럼 주정부 소유의 전력회사가 판매부문을 독점한 곳도 있다.

요금도 주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뉴욕은 우리나라보다 세 배가량 비싸다. 뉴욕시 퀸스에 거주하며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손종협씨 가정은 한 달에 180㎾h 전력을 사용하고 7만원가량 요금을 납부했다. 30%에 육박하는 예비율, 낮은 발전원가를 감안하면 국내에선 상상할 수 없는 요금 수준이다.

소매 부문에 경쟁을 도입한 주에서는 전력회사, 요금제 변경을 권유하는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온다. 다양한 사업자가 소매 부문에서 전력을 판매하면서 과당경쟁이나 담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각 주 공익위원회(PUC) 규제가 철저해 혼란을 예방한다.

전력요금에는 발전원가, 송배전비용 등을 반영한다. 다만 큰 폭의 등락을 방지하려 가격 상한선을 두고 있는 주가 많다. 최근에는 시장 기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이를 폐지하는 주가 늘고 있다.

요금 결정의 원칙은 합리적이다. 발전원가, 송배전 비용 등 소매요금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검증받는다.

웨인 가드너 펜실베이니아 PUC 위원장은 “소비자는 다양한 소매회사를 접촉하고 이들이 제시하는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다”며 “다양한 요금제도가 시장에 나와도 투명한 가격구조로 소비자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적절한 규제가 바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과 복지지원(호주)

전력시장 자율화와 전기요금 인상에 호주 소비자의 정서는 “정부가 하는 일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로 요약된다. 호주 전기요금은 최근 5년 사이 급격히 상승했다. 시장 자율화로 발생한 전력망 시설투자와 탄소세 영향이 컸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지금의 전기요금은 ㎾h당 평균 250원이다. 4인 가구의 일반 전기요금은 15만원가량,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2.5배 수준이다. 더 초과 사용하면 누진제가 적용돼 30만원을 훌쩍 넘긴다.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에 불만은 높지 않다. 호주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전력민영화 이후 들어오는 세금 대부분을 국민의 교육과 건강, 복지에 투입하기 때문이다.

임진배 호주대사관 서기관은 “국민소득 5만달러에 ㎾h당 250원은 저렴한 편이지만 5년 사이 전기요금은 세 배 가까이 인상됐다”며 “복지와 교육 지원이 국민에게 효율과 혜택이라는 인식으로 전환돼 불만 요소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국민의 전기요금 인상 합의는 정부 정책의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하든 이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이 소비자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 주방용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제이콥스 사장은 “4~5년 전에 비해 월 평균 전기요금이 갑절 이상 부과되고 있다”며 “하지만 가게 세제혜택과 복지 등 많은 부문에서 정부 지원이 상대적으로 많아져 수익이 오히려 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 록 호주광물에너지관광부 국장은 “호주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최종 목표는 `효율과 혜택`으로 말할 수 있다”며 “전력민영화는 국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는 시장경쟁체제의 변혁”이라고 말했다.

지난 6개월간 사용량(4번) 정보가 담겨 있고 사전 계획 사용량보다 실제 소비량이 많으면 굵게 표시해 소비자의 경각심을 고취시킨다.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원 비중(5번)을 확인할 수 있고 전기요금이 산정식(9번) 소비자들에게 공개한다.

◇회계문화로 전력에 무관심, 시장자율화로 변화(프랑스)

독점 국영기업이 전력시장을 담당할 때만 해도 전기·가스 요금에 프랑스 소비자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선택 가능한 다른 전력판매회사가 없었던 만큼 같은 요금의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받아왔다. 더욱이 프랑스는 일반 개인도 계약된 회계사가 각종 공과금을 처리해 전기요금 고지서를 개인이 관리하는 사례가 없다. 그만큼 전력요금에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전력에 대한 무관심은 시장이 개방되고 다수의 민간 기업이 영업활동을 하면서 달라졌다. 영업사원이 찾아와 기존에 사용한 전력을 분석해 더 좋은 회사의 서비스를 추천하고 요금을 줄일 수 있는 팁을 주면서 효율적 사용을 유도한다.

전기요금 고지서에는 원전·화력·신재생에너지와 같은 발전원 비율을 열거해 ㎾당 생산에 들어간 비용부터 송배전과 최종 수용가까지 전 과정 유통 비용이 포함돼 있다. 또 전기공적서비스비용분담금(CSPE)이라는 항목으로 프랑스 정부가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3%까지 높이고자 1㎾당 별도 세금을 부과한다.

소비자가 집을 옮기거나 새집에 입주할 때는 전력판매업체 변경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 쉽게 공급업체를 변경할 수 있다. 시장 개방에 따라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유도하려는 정책이다.

파리에서 한국식당을 운영하는 남모씨(53)는 “사용 패턴에 기반을 둔 체계적 전력요금제는 아직 갖추지 않았지만 사용절감을 유도하는 할인 정책 등 민간 기업의 마케팅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요금에서 시작하는 절전문화(일본)

일본 도쿄 4인 가구 평균 전기요금은 월 20만원 수준이다. 이는 절전을 했을 때 가능한 것으로 여름철 에어컨을 좀 사용했다 싶으면 요금은 순식간에 30만~40만원 수준으로 뛰어 오른다.

비단 전기뿐만이 아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주부 이경희씨는 상수도, 하수도 요금, 겨울철 난방용 도시가스 요금도 비싸기 때문에 전기요금을 포함해 네 가지를 합하면 매달 50만원 정도는 기본으로 지출해야 한다.

국내와 비교하면 과도한 수준의 요금이지만 현지 소비자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일본 특유 민족성과 절약습관이 이미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절전 습관은 전기요금고지서에도 잘 드러난다. 일본 전기요금고지서에는 해당 월 전력단가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촉진부과금, 태양광발전촉진부과금 단가가 포함돼 있다. 매월 달라지는 연료비를 안내하고 전월·현재·다음 달 세 개의 단가를 표기해 전력 이용현황과 다음 달 요금 예측이 가능하다.

신재생에너지, 태양광 발전촉진부과금을 구별해서 고지서 명기하고 있고 전년도 같은 달의 전기요금과 비교해 올해 사용량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1일 전기사용량 변동 추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도록 해 자연스럽게 전기절약을 유도하고 있다.

이 씨는 “전기절약에 적응하지 않고 한국에서처럼 펑펑 쓴다면 수입의 모두를 전기요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며 “에너지절약에 참여한다는 것보다 적응한다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아낌없이 쓰고, 쓰는 만큼 지불한다(싱가포르)

50% 달하는 전력예비율 가지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절전은 말 그대로 다른 나라 얘기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전력 대부분을 냉방수요로 사용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절전보다는 시원한 냉방을 이용한 업무 효율성 향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가정에 세 대 이상 에어컨이 있을 정도로 싱가포르 소비자의 냉방 사랑은 각별하다. 그만큼 전력사용량도 가구당 적게는 500㎾h에서 많게는 1000㎾h가 넘어갈 정도로 많다. 한 달 전기요금은 20만원을 넘기기 일쑤다.

전력예비율이 50%에 달할 정도로 공급이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전기요금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싱가포르의 전력 도매요금은 ㎾h당 190원 수준이지만 소매요금은 ㎾h당 270원 선이다. 이는 민간전력기업이 아닌 공기업(SP서비스) 전력요금이다.

싱가포르는 전력시장 자율화를 추진 중으로 아직 일반 가정시장은 공기업이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공기업이라고 해서 소비자에게 전력을 싸게 공급하지는 않는다. 전력예비율이 10% 아래에서 헤매고 있지만 도매요금과 소매요금 차이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요금 폭탄을 운운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현지 소비자는 요금에 불만이 없다.

`쓰는 만큼 지불한다`는 수요자 부담 원칙에 대한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높은 예비율에도 비싼 요금을 LNG 발전소 중심 전원구성과 청정 환경 대가로 생각한다. 전력시장 자율화 이후 요금이 올랐지만 그 원인을 시장 자율화가 아닌 연료비 상승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전기요금이 올라가더라도 충분하게 전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싱가포르 전력시장의 기본 가치관이다. 싱가포르 현지 일본 전자회사에서 근무 중인 로외나 총씨는 우리나라의 여름철 절전 캠페인을 듣고 “기업과 상가의 전력을 정부가 강제로 규제할 정도면 국가적 위기 수준 아니냐”고 되물은 후 “차라리 요금을 인상하더라도 소비자가 마음 놓고 전력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글로벌 전력민영화 시장 백태

특별취재팀이 방문한 6개국 전력거래 시장 가운데 같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전력시장 자율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민족과 역사·환경 등 다양한 여건이 다르듯 시장 자율화, 시장 운영, 전원설비 확충계획까지 어느 하나 같은 곳이 없다. 우리나라 전력시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해외 시장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례도 많다.

국토 면적이 넓은 미국에서는 사용한 전력비용보다 송전 비용이 더 나오는 곳도 있다. 실제로 사용한 전기요금은 2만원 수준인데 해당 지역까지 송전하는 비용이 4만원으로 전체 6만원의 전기요금을 지불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력사용량에 대해서만 전기요금이 고지되지만 지역 간 송전거리 편차가 심한 미국에서는 위치에 따라 추가 비용이 정산되는 셈이다.

밀양송전탑 건설과 같은 전원설비 추가 작업에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곳도 있다. 일본은 송전탑 건설문제를 자본으로 해결하고 있다. 지역주민과의 협상사례가 늘어날수록 협상금액이 늘어나긴 하지만 그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다.

물론 전원설비 확대에 국민적 공감대가 상당 부분 형성돼 있다. 일본 국민은 전원설비 건설계획이 발표되면 이를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로 발전회사와의 장기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영국은 전원설비 거부감이 극히 낮은 곳 중 하나다. 3개월 전 런던으로 발령받은 B씨는 초등학생 자녀의 학교 건물 바로 위에 고압선로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주변 현지 학부모와 이를 심각하게 논의했지만 설득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지 학부모는 고압선로가 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을 품으며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것이냐?(So What?)” 정도의 반응만 보였다.

전력 시장에 민간 기업이 참여하면서 서비스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호주에서는 전력회사가 소비자 가정의 조명을 절전형으로 교체하는 등 가가호호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소비자는 교체 확인서에 사인만 하면 된다. 전력회사는 이 확인서를 모아 정부로부터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전력시장 자율화로 소비자의 판매회사 교체가 활발해지면서 가격에 이어 서비스로까지 경쟁이 확대된 이유다. 지금도 매달 10가구 중 4가구가 전력회사를 변경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전력회사를 바꾸는 게 보편화되면서 영업사원이 피크시간대를 피해 전기요금을 줄이는 법을 홍보하는 등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국가 전원설비를 한 가지 연료에 올인하는 곳도 있다. 싱가포르는 청정 환경이라는 기조 아래 국가 모든 전력을 LNG로 생산하고 있다. 중국계 석탄화력발전소가 있긴 하지만 지난해 단 한 차례도 가동한 적이 없다. 하나의 자원에 국가 모든 전력을 생산하는 게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정작 싱가포르 전력당국은 연료만 한 종류일 뿐 수급처가 다양한 만큼 연료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