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의 시대다. 올 여름 급증하는 전력사용량 때문에 `블랙아웃`이 초래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렇다고 당장 전력을 대량 생산하는 발전소를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효율화 기술 개발과 정책이 답이다.
에너지효율 향상기술은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대안으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고효율 가전기기, 냉난방 기기, 조명기기, 건물의 단열기술 등 효율향상을 통한 에너지비용 절약효과는 설비투자 비용을 단기간에 회수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실가스 배출 감축 등 편익도 많다. `후회 없는 정책(Non Regret Option)`으로 불리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최근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수요증가와 공급 능력 부족에 따라 에너지가격 상승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각국의 에너지정책 운영의 핵심 이슈는 낮은 가격의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대응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태양광이나 태양열, 풍력, 연료전지와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과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효율 향상이다.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 확대와 에너지 자립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의 중요성은 대부분이 공감하지만 낮은 에너지밀도나 높은 생산단가 등 해결이 쉽지 않은 단기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철강·정유·석유화학·시멘트 등 에너지다소비산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GDP(국민소득) 1000달러를 생산하는데 투입되는 에너지총량인 `에너지 원단위`가 OECD국가 평균의 1.7배(0.308, 2010년)에 달한다. 에너지 수입 비중이 1차 에너지의 96% 이상이다. 에너지효율 향상이 매우 절실한 이유다.
미국이나 일본〃유럽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에너지효율향상을 중심으로 새로운 에너지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세계에서 에너지효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2006년에서 2030년까지의 정책방향이 담긴 `신국가 에너지 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30%의 효율개선(GDP 단위당 최종에너지소비)을 목표로 정했다.
미국은 최근 에너지 분야 R&D 중 `효율향상분야`에 예산 폭을 크게 늘렸다. 2012년부터 에너지효율 향상분야 R&D 예산이 재생에너지를 앞서기 시작했다. 2014년 예산안에서는 이런 추세가 더 강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에너지수요 및 안정적 공급의 중장기전략`을 수립해 수요측면 기술개발, 시설투자를 통한 효율향상〃에너지절약을 통한 에너지수요 억제 등을 주요 목표로 삼아 에너지원 단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시동을 걸었다. 에너지 기술을 종합 연구하는 대표적인 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과거 물자절약을 위해 범국가적으로 진행되었던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을 에너지 기술 개발에 접목시켜 관심을 끌고 있다.
`아껴쓰자`는 기술로 에너지기술연구소는 `순산소 연소(Oxi-fuel Combustion)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의 산업용 보일러에서는 화석연료를 공기와 반응시켜 공기 중 산소와 연료의 연소 반응만을 이용해왔지만 이를 개선해 공기 대신 산소만을 이용하도록 기술을 개발했다. 연료의 완전 연소를 도와 적은 연료로도 동일한 에너지양을 얻을 수 있다. 순산소 연소 기술은 고농도의 이산화탄소까지 얻을 수 있어 이산화탄소 회수 비용까지도 줄일 수 있다.
말 그대로 에너지를 쓰는 각 기기 자체 및 공정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나눠쓰자`는 기술은 에너지 생산기지로부터 생산된 에너지를 수요처가 적절히 나눠쓰게 함으로써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의미한다. `집단에너지`라고도 부르며 대표적인 예로 지역난방을 들 수 있다.
실제 유럽 선진국에서는 지역난방이 보편화돼 있다.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지역냉방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바꿔쓴다`는 의미의 기술로는 나눠쓰자는 개념과 함께 최근 에너지효율 기술 중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에너지 네트워크`를 개발 중이다.
상업용 건물의 경우 주간에 에너지 부하가 크고 일반 가정의 경우 야간에 에너지 부하가 크다. 이처럼 에너지 사용패턴이 다른 수요처들을 연결해 에너지를 나눠 쓰게 하고, 남으면 서로 바꿔 쓰게 함으로써 전체적인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 바로 에너지네트워크 기술이다. 김민성 에기연 에너지효율연구단장은 “미래에는 기존의 에너지원을 비롯한 태양, 풍력, 수소와 같은 다양한 신재생에너지원들이 이용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러한 다양한 에너지원과 에너지 수요처를 최적으로 연결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술이 필수다. 전기를 네트워킹 하는 기술로 `스마트 그리드`가 있듯 열을 네트워킹 하는 기술로 `열에너지네트워크`기술이 있다”고 말했다.
에기연은 현재 열에너지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3025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열수요처 가까이에 열기지(Thermal station)를 두고 열펌프(Heat pump)를 이용하는 열에너지네트워크 개념을 원내 11개 건물에 적용, 실증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3025`는 공조용 에너지소비를 30% 절감하면서도 연평균 실내온도를 25℃로 유지한다는 의미다. 에너지연은 10㎿급 열을 생산하는 `연소배가스 실험동`을 열기지로 삼아 원내 건물 간 스팀네트워크(Steam Network)를 구성해 건물 옥상의 태양열, 건물 지하의 지열 열원을 네트워킹했다.
`다시쓰자`는 폐열회수 기술을 의미한다. 에너지 변환과정의 열역학적 특성으로 인한 열손실, 즉 버려지는 열을 회수해 다시 쓰자는 것이다. 폐열을 회수하는 방법에는 폐열발전과 히트펌프 기술이 있다. 폐열발전은 ORC(Organic Rankine Cycle)와 같이 버려지는 열을 열원으로 삼아 유기용매를 작동유체로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히트펌프 기술은 사용하기 어려운 온도대의 폐열을 이용, 산업공정에 사용할 수 있는 90℃ 이상의 고온을 얻는 기술이다.
에기연은 현재 최고수준의 하이브리드 히트펌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히트펌프는 1의 에너지를 투입하면 약 3이상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고효율 폐열회수 기기다. 김민성 단장은 “개별 에너지 소비 기기의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공급처와 에너지 수요처간 최적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해 전체 에너지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