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중소기업 진흥정책보다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1980∼1990년대 사회 초년생의 필수 저축 아이템으로 재형저축(근로자재산형성저축)이 있었다. 서민들의 목돈마련저축으로 재형저축만한 상품이 없었다. 그런 재형저축이 폐지 18년 만에 부활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처음 마련한 서민 목돈마련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초기에만 반짝하고 바로 시들해졌다. 금리가 일반 정기적금보다 높았지만 급여 이체와 신용카드 사용·퇴직연금 가입 등 전제조건이 있었다. 가입 4년째부터는 변동금리로 바뀌고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7년 이상 유지해야 했다. 초기에 대대적인 홍보를 하던 은행도 역마진을 우려해 서둘러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새 상품이 나온다고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ET칼럼]중소기업 진흥정책보다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재형저축이 미혼 여성의 배우자감 선택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재형저축 가입대상이 연봉 5000만원 이하 직장인이나 연소득 3500만원 이하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다. 재형저축 가입 여부로 맞선 상대를 고른다는 세태에 안타까운 한숨이 절로 난다. 연봉 5000만원이면 고액 연봉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근로자 상위 70만명 안에 드는 수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중소기업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차장급이 받는 연봉과 맞먹는다.

인식이라는 게 참 무섭다. 사실이 아님에도 한 번 받아들이면 좀처럼 바꾸려하지 않는 게 사람의 인식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19∼29세 청년층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기업 취업 인식 조사 보고서`에서 중소기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성장(발전·33.2%)과 불안함(25.2%), 도전정신(22.2%), 어려움(9.6%)을 꼽았다. 성장과 도전정신 못지않게 불안함과 어려움이 청년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응답자의 80%가량이 중소기업에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한 것은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대부분(93.8%)이 청년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이유로 고학력화에 따른 취업자의 눈높이 상승(42.8%)과 경기침체로 인한 일자리 감소(23.8%), 직업 귀천의식 존재(20.4%) 등을 들었다. 실제로 중소기업 취업의향이 없는 청년층은 기피 이유로 낮은 급여수준과 고용불안을 꼽았을 정도로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 산업진흥 정책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맞춰져 있다. 중소기업청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통상자원부 정책도 중소기업 위주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임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중소기업청장 인선에서 홍역을 앓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상생협력이나 동반성장 정책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 마디로 `중소기업의, 중소기업에 의한,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잊은 게 있다. 중소기업을 진흥하는 정책 말고 중소기업이라는 단어에 진하게 물들어 있는 `고용불안, 낮은 연봉, 영원한 을, 3D업종`이라는 인식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다.

지난 정부 시절 중소기업 대책을 발표하는 공식회의 석상에서 “중소기업 육성정책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 장관님은 중소기업 육성정책 말고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한 중견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질문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싸~`했다는 일화가 있다.

정부는 그동안 중소기업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그 보호정책이 오히려 독이 된 사례도 없지 않다. 하나만 알고 뒤 따르는 부작용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중소기업에는 보호정책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청년층에게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만큼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