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위기의 지역민방, 탈출구 없나

위기의 지역민방

전주방송(JTV)은 지난해 6월 알피니언메디칼시스템즈(이하 알피니언)가 발행한 전환사채를 2016년 상환하는 조건으로 50억원에 매입했다. 전주방송은 지난해 매출액 187억원, 영업이익 18억원을 기록했다. 알피니언은 지난 2011년과 지난해 각각 영업적자 150억원, 125억원을 낸 회사로 부채 비율은 2644%에 달한다. 전주방송 대주주 일진홀딩스는 97.4% 지분을 소유한 알피니언에 전주방송 사내 유보금의 4분의 1을 투자했다. 전주방송의 유보금이 부실 계열사로 흘러들어간 셈이다.

[이슈분석]위기의 지역민방, 탈출구 없나

울산방송(ubc)은 지난 2010과 2011년 6개 ELS펀드에 각각 10억원씩 총 6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2개 펀드 만기 확정 손실액은 6억4800만원, 남은 4개 펀드 중 올해 5월 만기 상환한 펀드 외 3개 펀드는 8억4300만원의 평가액 손실을 내고 있다. 합하면 14억9100억원이다. 문제는 `1000만원 이상 투자 전결권자는 대표이사`라는 사규가 있음에도 결재를 받지 않고 투자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대주주 리스크

“유사한 사례는 무수하게 많습니다” 지역 지상파 방송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주주 관계사에 대한 홍보성 보도는 물론, 관계사 행사에 인력이 차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 다양성, 공공성 확보를 취지로 설립된 지역 지상파 방송이 허가 목적과는 무관하게 대주주의 사유물로 전락하고 있다. 1대 주주 40% 제한 규정에 따라 여러 주주가 지분을 나눠 갖지만 사실상 견제를 받지 않는다. 지역민방끼리 상호투자를 통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기도 한다. 대전방송 최대주주인 우성사료의 관계사 우성양행은 부산방송(KNN), 전주방송, 청주방송에 각각 0.45%·1.07%·3.39%씩 투자했다. 전주방송은 대구방송 지분 4.4%를 갖고 있다. KNN 최대주주인 넥센은 SBS의 최대주주인 미디어홀딩스에도 3.81%를, SBS미디어홀딩스 최대주주인 태영건설은 강원민방(G1), 부산방송에 각각 7.0%, 6.3%씩 투자했다. 대구방송 2대 주주인 귀뚜라미보일러는 SBS미디어홀딩스 주식 8.76%를 보유했다.

배당률도 비상장사 평균 배당률 7~8%보다 높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010년 지역민방의 최고 75%에 달하는 고배당 정책에 대해 `엄중 경고`를 하면서 행정지도까지 언급했지만 지난해 강원방송은 37.5%를, 전주방송은 54.3%씩 배당을 하는 등 고배당이 이어졌다.

◇제작비 감소 이중고

지역 민방들의 제작비 감소도 문제다. 지난 2011년 초 방송광고대행등에 관한 법률(미디어렙 법)이 통과된 후 광고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라 투자 재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고배당과 타법인 출자 등을 통해 현금이 빠져나가면 콘텐츠 질의 하락은 불보듯 뻔하다. 실제로 지역민방이 지난 2011년 방통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이후 방송제작비는 2009년까지 매년 1340억원, 1298억원, 1117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류한호 광주대 교수는 `지역민방에 대한 정책적 접근` 보고서에서 “겉으로 드러난 매출액 대비 제작비가 55%가 넘지만 방통위가 2011년 밝힌 지역민방 제작비 준수기준은 14%”라며 “외형상 통계는 인건비, 방송장비, 시설비 등 직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비용을 포함해 보고한 것이 아닌가 추정될 뿐”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표준 제작비 산출 기준이 없어서 간접비를 얼마든지 포함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통위 의결에서 볼 수 있듯 프로그램 제작에 투입되는 직접 제작비는 10%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 인력도 부족하다. 청주방송은 지난 2001년 이후 PD 공채가 끊겼다. 전주방송은 지난 6년간 신규 채용이 없었다. 전주방송 관계자는 “인력 감축을 통해 이익을 짜내고, 그나마 수익이 나면 이를 재투자하기 보다는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지면 SBS와 연계 판매 외에 직접 매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익성 추구, 제작비 축소로 콘텐츠 질 하락의 악순환 구조가 이어진다. 여기에 종합편성채널, IPTV 등이 가세하면서 지역 지상파는 살 길이 막막한 실정이다.

◇풀뿌리 여론·문화 지켜질까

한국P&C연구소가 최근 지역민방 9개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8.7%는 `단기적인 이익에만 집착하는 경영`이 가장 문제라고 꼽았다. 문제는 단기 수익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다. 수익 중심의 일반 기업 경영 철학을 반영하는 대주주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경비 절감을 하고, 공공성이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혜택만 있고 규제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크다. 방통위가 재허가권을 갖고 있지만 콘텐츠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2007년 방송위원회가 광주방송·강원민방·전주방송에 조건부 재허가 추천을 준 사례는 있지만 방송허가 취소 사례는 없다.

민영방송인 지역 민방에서 대주주의 지분이나 경영권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공공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주파수를 할당받아 사용한다. 통신사업자가 몇 년간 수조원씩 내면서 사용하는 전파를 무상으로 쓰는 이유 역시 지역 콘텐츠 발굴과 공공성 확보다. 미디어렙법안에 중소방송사 지원 방안이 담긴 것도 이 때문이다.

◇방송법 개정안, 해결책 될까

민주통합당 신경민·배재정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에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한 자는 해당 방송사업자의 경영과 방송프로그램의 제작·편성에 부당하게 관여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대표이사 선임 구조도 방송사 종사자와 시청자 대표기구가 참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방송편성책임자 임면권을 행사할 때도 취재, 제작, 편성 종사자 과반수 동의를 얻도록 했다. 재허가 심사 기준에도 소유와 경영, 방송프로그램 제작과 편성 분리, 시청자 권익 보호 방안, 수익의 공익적 사회 환원 계획에 관한 사항이 추가 됐다. 하지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업계 전문가는 “법안 자체가 종합편성채널, 중앙 지상파 등에 대한 규제 내용을 함께 담고 있어 국회 논의나 통과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체적으로 제도화해 실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껏 소외돼 온 시청자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고 방송발전기금 징수 방법 변경, 정부의 방송 공공성 평가 강화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