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를 표방해 출범 예정이던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이 삼성과 미래창조과학부의 이견으로 설립이 지연되고 있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삼성이 요구하는 연구개발 성과물에 대한 `무상통상실시권`과 `우선매수협상권`이다.
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까지 설립 예정이던 삼성미래기술재단은 출범이 늦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6월 프로그램 공지와 7월까지 과제 접수, 10월까지 과제 선정, 11월 본격 지원을 시작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삼성은 재단을 설립하면서 크게 두 가지를 정부에 요청했다. 과제를 통한 연구개발 성과(지식재산)를 삼성은 무상으로 이용하게 해 달라는 것(무상통상실시권)과 개발된 특허를 개발자가 판매할 때 삼성에 우선 구매할 권리(우선매수협상권)를 달라는 것이다.
삼성은 재단을 통한 연구개발(R&D) 성과물은 개발자가 가지지만, 출연금의 100%를 삼성전자가 부담하는 만큼 개발특허는 무상 이용권을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이 무상사용하는 특허라도 개발자가 다른 기업에 재판매하거나 사용료를 받는 것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국가 기초과학기술 개발 차원에서 큰 자금을 출연한 기여도를 감안할 때 그 결과물 일부를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결과물을 다시 유상으로 이용한다면 사실상 두 차례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미래부는 무상통상실시권은 인정이 불가하고 우선매수협상권은 용인을 검토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정부는 우선 재단과 출연 기업과의 완벽한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삼성이 공익성을 내세워 미래기술육성재단을 만들기로 한 만큼 출연기업이라 해도 별도의 특혜 부여는 어렵다는 것이다. 공익재단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조 1항 3호에는 공익재단 설립은 `목적사업이 적극적으로 공익을 유지·증진하는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돼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공익재단의 설립 목적을 준수하고 개발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호한다는 원칙은 지켜야 한다”며 “세 곳 이상의 법률·지식재산전문그룹의 의견 청취 결과에서도 삼성의 요구는 근거가 미흡한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삼성의 우선매수협상권 요구에는 정부도 최소한의 범위에서 권리를 인정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이 출연한 금액으로 개발된 특허가 해외 경쟁사나 특허괴물에 팔려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은 막자는 데는 일정부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이번 건과 관련해 참고할 유사 사례는 많지 않다. 구글 등 해외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일부 자금을 지원하고 결과물의 일부 권리를 가지는 일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재단이 아닌 기업이 직접 펼친 사업이었다. 대한암연구재단은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성과물을 재단이 소유해 공익 목적에 사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개발자의 연구개발 욕구가 저하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번에 불거진 정부와 기업 간 의견 조율은 향후 유사한 기업들의 재단 설립 과정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재계는 일정 부분 혜택이 보장되지 않으면 공익재단 사업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명분과 공익재단을 많이 만들어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확대하려는 실리 사이에서 방향타를 잘 잡아야 한다.
한편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은 창의적 국가 미래기술 육성을 위해 삼성이 올해부터 10년간 1조5000억원을 출연해 △기초과학 △소재기술 △ICT 융합 3대 미래기술 육성에 나서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 6월 출범 예정이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
·류경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