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 인선 지연, 사실상 실무 국정 `올 스톱`

한국거래소는 지난 15·16일 이틀 연속 대형 전산사고를 일으켰다. 금융거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거래소로서는 치명적 사고였다. 사고 원인을 놓고 설왕설래했지만 결국 수장의 부재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지난달 13일 김봉수 전 이사장이 사퇴한 후 후임 이사장 선정이 한 달 이상 늦어지면서 기강이 해이해진 탓이라는 것이다.

기관장 인선 지연으로 공공기관 업무 공백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기관 사령탑에 구멍이 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심각하다. 업무 공백에 따른 기관 운영 부실화는 물론이고 주요 정책과 사업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6개월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신규 사업 추진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리더십이 사라지면서 업무 생산성도 크게 떨어졌다. 임기가 끝난 기관장 밑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퇴임을 앞둔 기관장에게 중장기 업무를 보고하기도,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이 때문에 관련 부처와 공공기관은 최종 결정권을 가진 청와대가 더 늦기 전에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지난 5월 전임 이사장 사임 이후 두 달째 기관장이 없다. 이사장 부재 시 기관을 책임져야 할 부이사장은 이미 지난 3월 임기가 만료돼 공단을 떠났다. 청와대가 지난 6월 공공기관장 임명절차를 잠정 중단하도록 관련 부처에 지시한 후 벌어진 일이다.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도 지난 17일 임기가 만료됐으나 후임 이사장 선임이 지연되면서 근근이 자리를 지키는 상황만 연출하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 지시 후 공공기관장 인선은 `올 스톱`됐다. 산업부는 산하 41개 공공기관 가운데 6명의 기관장이 공석이다. 여기에 올해 임기가 종료됐거나 만료 예정인 기관장 6명, 기관장 경영평가에서 `E등급`을 받아 사퇴가 예정된 대한석탄공사까지 포함하면 기관장 공백 사태가 우려되는 곳은 10여곳에 달한다.

이에 따라 기관장 인사 결정권을 가진 청와대가 발 빠르게 인선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에는 워낙 신중하고 보안을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라 대통령 외에는 아무도 유력인사나 낙점 시기를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직언하는 그룹도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다음 주 여름휴가 전까지 상징적으로 몇몇 공공기관장의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지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박 대통령이 여름휴가지에서 기관장 인사를 검토해 복귀와 함께 발표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예상외로 인물이 없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새 정부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창조경제를 이끌 수 있는 인사들을 전면 배치해야 하는데, 인물은 없고 이전 정부 사람들이 버티거나 구명을 위해 로비하는 상황까지 초래한 게 인물난을 반영한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듯이 새 정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기관장으로 인선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며 “하지만 공공기관장 인사가 언제 본격화할지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기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부처와 기관은 청와대가 결단을 내려줄 것을 주문했다. 한 부처 관계자는 “어쨌든 인사를 할 것이라면 빨리 해서 업무공백을 최소화하든지 아니면 부처 장관에게 산하기관장 인사권을 보장하든지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면서 “그래야 새 정부가 집행력을 갖고 창조경제를 드라이브할 수 있고, 민간 또한 이를 추동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