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I검증사업, 중단위기

한국전력이 추진하는 스마트그리드원격검침인프라(AMI) 검증사업이 중단 위기에 처했다.

핵심부품 공급업체가 검증사업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칩메이커 퀄컴과 마벨은 최근 한전 전력연구원이 추진하는 `지중 원격검침용 광대역 PLC성능비교시험` 사업에 전력선통신선(PLC)칩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두 업체 결정에 국내 부품업체 크레너스도 부품을 공급하지 않을 방침이다.

당초 한전은 검증사업에서 외산 칩 2종과 국산 칩 2종을 채용한 각각의 AMI용 통신모뎀과 데이터집합장치(DCU)를 제작해 지중 환경에서 교차 비교·평가키로 했다. 평가 후 성능이 뛰어난 칩을 국가 AMI 사업에 적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에 필요한 4개 칩 중 3개 칩 회사가 참여를 거부한 셈이다. 이 때문에 사업 수행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마벨은 최근 이메일 공문에서 한전 전력연구원에 검증사업 수행업체에 자사 칩을 공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문에서 마벨은 경쟁사가 제품 공급과 구축을 담당, 자사 제품 공급 요청에 따를 수 없다고 밝혔다. 경쟁사에 제품, 자료, 가격 등 주요 사항을 공개할 수 없다는 본사 방침 때문이다. 특히 마벨이 승인하지 않은 제품의 성능을 책임질 수 없다며 구 버전 칩 사용도 자제해 달라고 연구원 측에 요청했다.

퀄컴도 부품을 공급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퀄컴 관계자는 “칩 가격과 기술 정보가 경쟁사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며 “경쟁 업체에 장비 제작에 필요한 PLC칩 기술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산업체가 부품 공급을 중단하자 국내 부품업체 한 곳도 참여를 보류했다.

전지용 크레너스 부사장은 “퀄컴과 마벨이 칩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검증사업 자체가 의미 없다”며 “장비 업체와 협의를 통해 칩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 전력연구원은 퀄컴 측에 사업진행을 위한 칩 공급 요청 공문을 전달하는 한편 사업 중단에 따른 사후조치를 준비 중이다.

하복남 한전 전력연구원 스마트에너지 연구소장(처장)은 “칩 공급업체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며 “다음달 19일까지 부품이 공급되지 않으면 사업진행이 어려워 사업계약도 해지 된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