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은 미국에서나 일어나는 거야.”
그런데 영국에서도 사건은 벌어졌다. 불량아로 낙인 찍혀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아이들은 페인트칠을 하다가 이상한 조짐을 발견한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갑자기 얼음 덩어리가 내린다. 아니, 내리 꽂히면서 자동차나 벤치 등을 부순다.
![미스피츠](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7/26/458751_20130726184517_884_0001.jpg)
드라마 `미스피츠(Misfits)`의 한 장면이다. 얼음 폭풍을 경험한 사람들은 갑자기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게 된다든가 투명인간이 되는 등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 원치 않는 일 앞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있고 젊음을 되찾은 노인도 있다. 반대로 합리적이고 성실했던 보호관찰관은 폭력적인 괴물로 돌변해 도끼로 사람들을 죽이러 다닌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특이한 자연현상을 겪고 초능력을 얻은 사람들 이야기다.
드라마 속에서 떨어진 얼음 덩어리는 우박이라고 하기에는 부피가 너무 크다. 어림잡아 대형마트에서 보내는 배송 상자 크기는 되는 것 같다. 구름이 이렇게 큰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정도 크기는 아니지만 계란 크기 정도는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올해 5월 중국 충칭시의 한 마을이 초토화됐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우박이 내려 슬레이트 지붕까지 뚫었다고 한다.
우박은 하늘에서 얼음 입자 주위로 물방울이 달라붙어서 만들어진다. 지상은 따뜻해도 상공은 영하로 떨어질 수 있다. 상공에서 찬 공기 때문에 얼음 결정이 생기고, 따뜻한 아래로 내려오면 녹아서 비가 된다. 문제는 상승기류가 생길 때다. 빗방울이 차가운 상공으로 밀려 올라가 점점 얼음 입자 크기가 커져 녹을 새도 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봄·가을에 우박이 잦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름은 기온이 아주 높기 때문에 우박이 생겨도 쉽게 녹고, 겨울에는 수분이 적어 얼음 입자에 달라붙을 수증기가 부족하다. 봄·가을은 지면은 따뜻하지만 상공은 영하 30℃ 가까이 떨어지는 일도 있어 상승기류가 세다.
사람들은 날씨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태양 고도가 높아지고 기온이 오르면 점점 강해지는 햇빛이 간뇌를 자극해서 뇌하수체에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 반대로 기온이 떨어지면 호르몬이 줄어들어 봄·여름에 들떴던 기분이 가을·겨울을 거치면서 가라앉는다. 습도가 높고 더운 여름에 싸움이 잦고 범죄율도 높아진다는 건 상식이 됐을 정도로 날씨는 우리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가을에 탈모가 많은 이유는 기후 변화 때문에 피부가 수축·팽창을 하기 때문이고 날씨에 따라 입맛도 변한다. 60℃일 때 매운맛을 잘 느낄 수 있고 짠맛은 27℃, 단맛은 35℃에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이상기온 때문에 변덕스러운 요즘 날씨를 보면 괴상할 정도로 강력한 상승기류가 생기고 그 속에서 큰 얼음 덩어리가 생길 가능성도 없다고는 못 하겠다. 그리고 그 정도로 날씨가 이상하다면 드라마 속 등장인물처럼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갖거나 미쳐버리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얼마 전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 우박이 내려 포도 농가가 피해를 입어 포도주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날씨가 급변하면 입맛도 변하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게 바뀌고 먹는 게 달라지면 체질이나 성격도 바뀌고 성격이 달라지면 삶 전체가 종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날씨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특이하게 변하면 어떻게 될까. 2000년대를 막 지난 어느 날 일본 라디오에서는 `하늘에서 정어리가 떨어졌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의 한 장면이다. 황당무계한 설정이지만 정어리가 내린 날을 기점으로 소설 속 세계 역시 변하게 된다.
가끔씩은 실제로 하늘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떨어지기도 한다. 길을 걷고 있는데 “물신주의에 찌든 세상이 싫다”며 돈 다발을 허공에 흩뿌리는 사람을 만난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