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 영상저장장치(DVR) 업계가 중국산 저가 제품에 고전하면서 시장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대규모 물량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제품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수출 판로 개척에도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DVR 시장에 저가 중국산 제품과 부품이 밀려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가 국내 유통 업체에 공급하는 DVR 가격은 평균 30~50달러 수준”이라며 “국내 업체가 생산하는 가격보다 절반 이상 저렴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 DVR 업계가 중국산 제품에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 전자통신기기 제조 대기업 화웨이의 팹리스 자회사인 하이실리콘(HiSilicon)이 핵심 부품인 영상처리 칩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하이실리콘은 화웨이의 통신 칩 제조기술과 막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며 DVR 칩 시장을 장악했다”며 “중국 업체는 자국 기업에서 원가로 공급 받을 수 있지만 국내 업체는 수입 과정에서 관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가격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통상 DVR 업계는 영상 처리 칩을 기반으로 완제품에 적합한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 탑재한다. 칩 공급 업체를 바꾸게 되면 호환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1~2년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국내 DVR 업계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이실리콘 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칩 가격을 10달러 아래로 내려야 하지만 100억원 이상을 설비비용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다”며 “최근 국내 한 칩 제조업체도 투자를 받지 못해 결국 시장을 떠났다”고 전했다.
국내 업계는 지난 2008년 한국디지털CCTV연구조합(KDCA·회장 김승범)을 설립해 칩 공동구매, 유통망 개선, 공동 연구개발(R&D) 등 다양한 대책을 모색하며 중국산 제품 난립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정식 절차를 거쳐 수입되는 하이실리콘 칩을 견제할 수 있는 자금력과 기술을 갖춘 국내 업체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DVR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도 뚜렷하지 않아 KDCA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KDCA의 한 회원사 관계자는 “유통 이윤을 줄이기 위해 생산 업체가 직접 인터넷 쇼핑몰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며 “DVR는 물론이고 IP카메라나 네트워크비디오녹화기(NVR) 등 차세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국내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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