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기기검증 시험기관의 성적서 위조 사건으로 인해 해당 원전 가동이 중지됐다. 과거에 시행된 시험성적서 전체의 진위를 조사하는 등 원전 안전 운영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각 분야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성실한 원전 종사자들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까지도 큰 상처를 안겨주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원전 도입 초기 우리나라는 열악한 재정사정으로 인해 외국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원전을 건설했다. 차관 제공국가의 원전을 그대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원전 선진국의 박람회장과 같이 원전이 건설되고 운영됐다. 서로 다른 표준으로 인해 운영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자체 표준개발의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됐다. 이에 1987년 정부의 전력기술 자립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고유 표준인 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개발이 시작됐다. 지금은 원자력발전, 화력발전 등 전력산업 전 분야에 걸쳐 6만30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표준을 개발, 보유하게 됐다.
처음 KEPIC은 한국전력공사(전력산업구조개편 이전) 주관으로 개발이 진행됐으나 표준 사용자인 한전에서 개발하고 운용하는 것은 객관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1995년 6월 대한전기협회를 KEPIC 개발 및 운영 전담기구로 지정됐다.
KEPIC은 전력산업계의 자율적 합의표준으로서 선진국들도 모두 협회나 학회와 같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표준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설비에 적용된 ASME(미국기계학회), IEEE(미국전기전자학회), ACI(미국콘크리트협회) 등 미국의 표준을 주로 참조하여 KEPIC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된 기기검증은 원전의 안전성을 위해 중요한 품목이 수명기간 동안 원래의 성능뿐만 아니라 가혹한 환경조건이나 설계지진 상황에서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통상 시험 또는 해석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규제완화는 시대적 추세며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분야에 대해 규제를 완화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때도 있다. 현재 불가피하게 대한전기협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KEPIC 기기검증 시험기관에 대한 자격인증제도도 과거와 같이 정부가 직접 통제, 관리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정부 종합대책에서는 이러한 방향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검증시험기관에 대한 전문인증관리기관을 지정하고 검증시험결과를 중복 검토하도록 하는 개선방안이 제시됐으며 원자력안전법의 개정 등 후속조치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기술적 요건을 구비하고 제도를 보완하더라도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확고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기기검증 분야는 그 중요성에 비해 국내 전문 기술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각 시험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도 충분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검증시험기관을 무분별하게 활용하게 된다면 국내 기술을 공식적으로 해외에 유출할 우려가 있다. 이에 각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 시험설비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협회 차원에서도 그동안 개발한 KEPIC이 관련 분야에서 널리, 그리고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정을 마련해 기술인력 양성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우리나라 전력산업 인프라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김무영 대한전기협회 상근부회장 ktk@electricit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