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피크 대안으로 꼽히는 가스히트펌프(GHP) 보급 확산을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혜택의 대부분을 외산 제품이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히트펌프는 시스템에어컨의 한 종류로 일반 전기 대신 LNG나 LPG 등 가스를 이용해 실외기 엔진을 가동하는 냉난방기기다. 설치비용이 전기 사용 제품에 비해 1.5배로 비싸고 정기적 유지보수가 필요하지만 최근 전력난이 이슈가 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제품이다.
6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6월 연면적 1000㎡ 이상의 공공건물은 신축·증축 시 냉방 수요의 60% 이상을 심야전력과 도시가스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 규정`을 개정했다. 기존 3000㎡ 이상보다 규정을 강화해 GHP 보급을 확산하는 게 골자다. 이와 함께 한 대당 수백에서 1000만원을 호가하는 GHP 한 대당 최소 250만원 이상의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전력피크 완화를 위한 정부의 GHP 확대정책의 실질적 수혜가 외산 제품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국내 GHP 시장은 80% 이상을 외산, 특히 일본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LG전자가 지난해 말 국산화에 성공해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을 뿐 다른 국내 사업자들은 자체 제품을 확보하지 못했다. GHP의 핵심인 실외기는 주로 일본 제품을 들여와 설치를 진행하는 방식을 따른다.
업계에 따르면 1996년부터 지급돼온 가스 냉난방기 지원금은 올 상반기까지 547억원에 이른다. 2005년 이후 GHP 보급에 쓰인 금액은 210억원으로 추산된다.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설치장려금을 받은 GHP는 총 110군데 현장에 도입된 595대다. 삼천리ES(일본 얀마·다이킨 제품 중심)가 47군데 현장에 289대를 공급해 최대 실적을 거뒀다. 삼성전자(실외기 일본 아이신·실내기 삼성 제품 중심)는 42군데 현장에 208대를 공급했다. 국산 자사 제품으로 사업을 하는 LG전자는 18군데 현장에 98대를 보급했다.
이 같은 실적에서 외산제품에 정부보조금이 집중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부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보조금 지급은 GHP 보급 확대가 주목적으로 일반 연구개발(R&D)사업과는 정책 방향이 다르다”며 “그동안 국산 제품이 부족했고 외산 제품을 배타적으로 회피하게 되면 통상마찰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조달등록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난다. 공공기관 구매를 위해서는 국가종합전자조달입찰에 참여해야 하지만, 외산 수입업체들은 `수입품이 환율변동에 따라 단가계약 유지가 어렵다`는 이유로 조달 등록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LG전자는 조달 등록을 원하지만 단일 기업 등록만으로는 경쟁입찰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GHP의 도입이 필요한 때마다 지방조달청에서 별도 구매입찰이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전기가 아닌 가스를 이용한 냉난방기기는 수요 부족으로 국산화가 더뎠다. 이로 인해 일본산 제품이 국내 GHP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제품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국산화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며 “국민 세금으로 지급되는 가스 냉방기기 보조금이 내수산업을 활성화하고 국산제품 수출상품화까지 이루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
가스히트펌프(GHP)
전기 시스템에어컨과 마찬가지로 한 대의 실외기와 다수의 실내기를 냉매 배관으로 연결해 냉매압축 사이클에 의해 여름에는 냉방, 겨울에는 난방을 하는 냉난방기기. 전기를 사용하는 대신 LNG 및 LPG를 사용해 실외기 내 가스 엔진을 운전시켜 압축기를 구동. 실외기가 제품의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