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표준을 따르는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국내 전기자동차 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전력이 전국 2194만가구에 구축하는 원격검침인프라(AMI)와 이들의 국제표준 충전방식(콤보) 간 통신 간섭을 이유로 정부가 표준 채택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GM(스파크EV)을 시작으로 BMW, 폴크스바겐 등이 국내 진출을 앞두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은 최근 독일 국제표준화기구(ISO)와 충전기 국제표준인 `콤보(TYPE1)`와 한전의 AMI용 전력선통신(PLC) 간 상호공존 테스트 결과 통신 간섭이 발생했다고 8일 밝혔다.
기표원은 국내 표준에 콤보 방식을 수용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GM을 포함해 BMW, 폴크스바겐, 포드, 크라이슬러 등 대다수 완성차가 콤보를 따르고 있어 국내에 출시하더라도 20분 전후의 급속충전은 어려울 전망이다. 향후 정부나 민간사업자가 설치하는 급속충전기에는 콤보를 적용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국내 충전인프라는 기아차의 `레이EV`와 르노삼성 `SM3 ZE` 두 종의 차량만 급속충전이 가능하게 됐다. 기표원이 이들 충전 방식인 `현대 차데모`와 `교류3상`을 표준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기아차도 차기 모델(쏘울EV)부터 콤보 방식을 채택한다고 밝혀 수용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공통된 의견이다.
기표원 관계자는 “최근 독일 ISO와 함께 한전 PLC와 콤보 간 상호공존 테스트를 한 결과 주파수 대역이 같아 통신 간섭이 발생했다”며 “콤보가 세계적 추세지만 국내 AMI와의 간섭 때문에 국내 표준에 콤보 채택은 어려워 오히려 완성차업체들이 국내 표준에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전PLC와 콤보의 통신 방식(홈 플러그 그린PHY)은 같은 고속PLC칩으로 분류돼 동일한 주파수 대역을 사용한다. 하지만 콤보의 주파수 출력값이 강해 한전PLC 구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해외 완성차업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이 콤보 방식으로 일원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시장만을 위해 차량 설계를 다시 할 수 없어 국내 진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외산차업체 관계자는 “한국 시장만을 위해 이미 완성된 차의 충전 방식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 진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을 포함해 세계 어디에서도 검증이 안 된 한전의 PLC만을 고집하는데다 해결책 마련에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완성차업체뿐 아니라 국내 충전기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콤보 방식과 국내용 충전기 모두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태영 전기차충전인프라위원회 위원장은 “업계는 국내외용 충전기 개발과 생산에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들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잃게 된다”며 “다수의 전기차를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완성차와 충전기업체 간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출시예정인 완성차 업체 충전표준 현황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