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구증구포(九蒸九?)

윤오영 수필 중에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신뢰의 중요성을 풀어낸 수필이다. 수필에서 작가는 구증구포(九蒸九〃)하는 숙지황을 예로 들어 노인과의 신뢰에 대한 이야기에 힘을 보탰다. 구증구포는 원래 재료를 찌고 말리는 것을 아홉 번 반복하는 것으로서 약성을 좋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차(茶)도 생 찻잎을 가마솥에서 덖고 유념시키며 건조하는 조작을 아홉 번 반복하여 만들기도 한다.

최근 MB정부에서 강조했던 녹색성장의 뒷맛이 씁쓸하다. 전기차를 생산하던 업체는 모두 상장폐지 됐고, 차세대 산업으로 각광받던 태양광 관련 업체는 고사위기에 몰려 있다. 시장 전망을 잘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들 업체의 위기가 단순히 시장만의 문제일까.

새로운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가 동반돼야 한다. 우리 경제성장을 이끈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장기적인 안목과 꾸준한 정책의 성공 사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62년 시작돼 5년 단위로 5차에 걸쳐 25년간 이뤄졌다.

제대로 된 약재나 차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는데 하물며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국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5년 단위로 뒤바뀐다면 과연 국가 미래가 제대로 준비될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은 필요하다. 물론 이전 정부의 어떤 정책이 가치 있다는 전제 하에서다. 그래야 기업들도 정부 정책에 신뢰를 갖고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이번 정부는 창조경제를 화두로 삼았다. 과학기술과 IT를 기반으로 한 일자리 창출을 기치로 창업과 벤처육성 등에 정권의 역량을 모두 쏟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권적 속성을 감안한다면 5년 뒤 창조경제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