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147>밀레니엄 버그 전쟁(2)

창과 방패. 공격과 방어를 상징화한 표현이다.

컴퓨터 2000년 표시문제(Y2K)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였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공포, 그 자체였다.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 버그가 발생했다. 갑자기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켜 신용카드 사용이 일제히 멈췄다. 고층빌딩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서고 전화도 불통이 된다. 그보다 더 한 상황도 발생한다. 핵발전소의 원자로가 녹아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갑자기 추락한다.”

Y2K문제 해결을 위한 통신분야 최고경영자 간담회가 1998년 8월 19일 한국전산원 주관으로 열렸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제공>
Y2K문제 해결을 위한 통신분야 최고경영자 간담회가 1998년 8월 19일 한국전산원 주관으로 열렸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제공>

현실이라면 어떨까. 당연히 인류 대재앙이다. 생각만 해도 인간 생활의 이기(利器)이자 필수품인 컴퓨터가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다는 밀레니엄 버그 대책마련이 급선무였다.

정부는 1998년 3월 31일 Y2K문제 1차 대책에서 기관별 업무를 분장했다.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정통부는 국가 사회 전반의 추진실태 관리와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Y2K 운영 실무, 언론기관과 Y2K 문제 공동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했다. 한국전산원은 Y2K기술자문단 구성과 Y2K 정보안내, 코드체계 표준화를 맡기로 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는 전문기술인력 운영과 정보안내 센터 운영, 순회설명회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행정자치부(현 안전행정부)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문제 해결지원, 정보안내센터 운영, 주민등록번호 코드체계 표준화를 맡기로 했다.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은 업종별 협회 조합을 통한 실태조사, 중소기업지원대책협의회 구성과 지원 대책을 담당했다. 각 부처 공통으로 Y2K대책반을 구성해 소관부처 산하기관 및 정부투자기관 대책을 독려하기로 했다.

정부는 Y2K문제 13대 중점 분야를 선정해 분야별 기관을 지정했다.

13대 중점 분야는 △전력·에너지(건설교통부·산업자원부)△원전(과학기술부)△통신(정보통신부)△수자원(건설교통부·환경부)△운송(건설교통부·철도청·경찰청)△해운항만(해양수산부)△금융(행정자치부·한국은행)△환경(환경부)△의료(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청)△국방(국방부)△중소기업(중소기업청)△산업자동화설비(산업자원부)△중앙과 지방행정기관(행정자치부) 등이다.

한국전산원은 그해 4월 3일부터 30일까지 1177개 기관을 대상으로 Y2K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행정자치부와 정보통신부,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등에서 주민등록시스템과 국세통합전산망, 한국통신(현 KT) 교환기, 항공관제시스템, 한국가스공사 가스 생산·공급시스템, 의료보험시스템, 한국전력 송배전 시스템, 금융결제원 타행환공동망, 포항제철 산업자동화 설비를 점검했다. 점검반은 주관 부처 점검팀 11명과 한국전산원 3명, 한국전자통신연구원 1명, 업계 전문가 22명 등 37명으로 구성했다.

한국전산원은 이 결과를 그해 5월 29일 정보통신부에 보고했다.

한국전산원은 그해 6월 12일 삼성SDS와 한국IBM, LG전자 등 29개 업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정보시스템별 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는 △응용소프트웨어 △주전산기 △통신기기 △패키지소프트 등이다.

한국전산원은 그해 9월 14일부터 23일까지 47명의 점검반이 경찰청과 아시아나 항공 등 20개 기관을 대상으로 2차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3차는 그해 11월 16일부터 28일까지 16명의 점검반이 예산청과 조달청 등 26기관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했다.

한국전산원은 각 부처 요청에 따라 현장점검 지원도 했다.

한국전산원은 그해 4월 30일 Y2K소식지 창간호를 발행했다. 격주간으로 발간되는 이 소식지는 2000년대 연도 표기문제 해결 등에 관한 정책 소식, 해외뉴스, 주요국 정책자료 등을 소개했다.

소식지는 1999년 12월까지 발행했다.

한국통신(현 KT)도 Y2K 문제해결을 위해 그해 5월 이정욱 부사장(현 한국정보통신감리협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12명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한국통신은 5월 22일 Y2K 기본지침을 마련해 전 부서에 시달했다. 이후 한국통신은 6월 14일 사업부서별 실행계획을 확정해 문제 해결에 착수했다.

1998년 6월 25일.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회의실에서 제2차 Y2K 문제 대책협의회가 열렸다.

위원장인 한정길 국무조정실 경제행정조정관(과학기술부 차관 역임, 현 한국원가관리협회 회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는 위원인 행자부 행정관리국장과 자치지원국장, 산자부 산업기술국장, 정통부 석호익 정보기반심의관(현 통일IT포럼 회장, ETRI 초빙연구원), 예산청 사회예산국장, 중소기업청 경영지원국장, 한국은행 부총재보, 한국전산원 선우종원 Y2K종합지원센터 본부장(티맥스소프트 부사장 역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사업관리본부장, 정보통신업계 Y2K대책위원장, 김효석 중앙대 교수(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정책연구원장 역임)가 참석했다.

그해 6월 신SW상품상 시상에서 케미스(대표 박병형)가 출품한 `예스!2000`이 장려상을 받았다. 이 제품은 Y2K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이다. 밀레니엄버그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을 분석해 자동 변환시키는 검색엔진으로, 사용방법이 간편하고 외산제품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스!2000`은 중소기업청·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추진하는 중소기업 Y2K 문제 해결 공식제품으로 추천됐다.

그해 7월 28일.

정통부와 국무조정실은 Y2K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각 기관에서 따라야 할 절차와 방법을 담은 Y2K추진지침을 작성해 50개 중앙행정기관에 배포했다.

이 지침에서 정통부는 각급 기관은 Y2K 버그 발생 시 문제인식-영향평가-변환-검증-시험운영 5단계 추진 모델로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정통부는 이와 함께 △핵심 업무를 선정해 문제발생 여부 등을 평가하고 문제해결 세부추진계획 수립방법을 제시한 영향평가 지침과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기획지침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툴(tool) 선정지침도 배포했다.

정통부는 정보화기획실에 설치한 Y2K대책반 규모도 확대했다. 반장은 초대 유영환 과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에서 그해 3월 19일 김인식 과장(정보통신공무원 교육원장, 한국정보인증 대표 역임, 현 한국스마트TV협회 부회장)이 맡았다.

그해 9월 17일 신순식 과장(전남·부산체신청장,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부회장 역임)으로 바뀌었다. 신 과장은 국무총리실에 파견 나가 정보통신담당 과장으로 Y2K대책협의회 간사를 맡은 경력이 있어 정통부 초고속망기획과장으로 발령이 났지만 업무 연속성을 고려해 Y2K대책반장을 맡았다.

당시 대책반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송승현 사무관(현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정책기획과장)의 말.

“처음 유수근 서기관(부산체신청장 역임)으로부터 Y2K 문제업무를 넘겨받았는데 나중에 이도규 사무관(현 ITU전권회의추진단 기획총괄과장)과 서선일 사무관(현 변호사)이 들어왔어요.”

이도규 당시 사무관의 기억.

“저는 1998년 6월에 발령받아 처음부터 Y2K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9월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Y2K 문제의 철저한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공공취로사업 대상자와 방법의 내실화 △대외신인도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대외홍보 △컴퓨터 2000년 표기 문제 대책 △제2 건국위 출범 준비 등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해 12월 9일.

한국전산원은 Y2K 문제 해결을 위한 검증지침을 마련해 정통부에 제출했다.

박성득 한국전산원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은 서문에서 “이 지침은 Y2K 검증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안내서”라고 강조했다.

이 지침은 Y2K 문제해결 과정 중 검증단계에서 각급 기관이 수행해야 할 세부절차와 활동 요령을 제시했다. 지침은 또 검증단계에서 제시한 활동사항을 단위시험, 통합시험, 시스템인수시험, 연결시험에 대해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관련 사항을 점검하도록 했다.

이 지침 제작은 선우종성 한국전산원 정보화평가분석단장이 연구책임을 맡고 이용효 Y2K문제해결부 지원부장(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행정정보센터 소장 역임)과 구자환 선임연구원, 이강신 선임연구원. 김맘욱 선임연구원, 신수정 주임연구원, 유주현, 정승호 연구원이 참여했다.

그해 12월 10일.

정부는 이 같은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기 위해 최근 `컴퓨터 2000년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수립 및 지원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제정했다.

그해 12월 31일.

정부는 컴퓨터 2000년 문제해결에 관한 촉진법(법률 제6092호)을 제정, 공포했다.

10조 부칙으로 된 이 법은 Y2K 문제 해결을 촉진하기 위한 재정지원의 특례에 관한 사항과 Y2K 문제 발생으로 인한 분쟁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절차와 사항을 규정했다. 또 국가나 자방자치단체는 Y2K 문제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하며 이와 관련한 비밀이나 정보는 누설하거나 복제 배포하지 못하도록 했다.

정통부 장관은 이 법에 따라 정보시스템 등의 설치 운영자에게 대한 인력을 지원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Y2K 문제 예산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Y2K 문제 분쟁 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통부에 Y2K분쟁조정위원회를 두며 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1명을 포함해 10명 이상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이 법을 위반한 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했다.

1998년을 마무리하면서 밀레니엄 버그를 막기 위한 정부의 활동은 그물망처럼 빈틈이 없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