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독일 완성차 브랜드 BMW 첫 전기차 i3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i3 소재. `꿈의 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주재료로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등 고강도·경량화 소재를 대거 사용했다.
경쟁차 대비 300~600kg 가량 무게를 줄였다. 제조과정이 복잡해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지만 BMW가 탄소섬유 소재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친환경차로 각광받고 있는 전기차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주행거리가 짧다는 것이다.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차량 무게를 줄여야 한다. 강철 소재보다 4배, 알루미늄보다 3배 이상 가벼우면서도 뛰어난 강도를 지니고 있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이 해답이 됐다.
40여년 전 최초로 시장에 출시된 탄소섬유는 비싼 생산가격으로 인해 우주 항공기술이나 스포츠 분야에서만 사용되는 특수 소재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지난 2~3년 사이 탄소섬유시장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탄소섬유가 다양한 분야에서 경량화 핵심 소재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자동차나 신재생에너지 산업 분야에서도 활용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와 전시자동차 경량화를 위한 기업 노력과 맞물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BMW를 비롯한 독일 완성차 기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경량 소재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폴크스바겐·다임러·아우디 등은 앞다퉈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 공정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다임러는 일본의 도레이와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시리즈 모델을 출시하기로 합의했으며 앞으로 차량 경량화를 위해 보다 폭넓은 제휴를 확대해 나간다. 아우디도 지난 2011년 독일 기계제조사인 포이트(voith)와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 산업생산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모기업인 폴크스바겐도 XL1에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을 21% 사용할 계획이다. 특히 폴크스바겐은 부품 공정 효율화로 납품업체와 함께 진전된 공정을 개발해 특허도 확보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맥킨지는 탄소섬유강화 소재 수요가 2030년까지 연 20%씩 증가하고 이에 따라 자동차 경량 부품 비중도 30~70%까지 증가해 관련 매출이 3000억유로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나아가 독일 함부르크-하르부르크 공과대학에서는 나노 소재를 탄소강화플라스틱 소재와 접합하는 산학기술개발에 한창이다. 최근에는 아크릴섬유를 고온에서 가공 제조하는 공법으로 강도가 훨씬 뛰어난 새로운 탄소섬유도 개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탄소섬유는 항공기나 우주항공, 자동차 외에도 신재생에너지 분야나 토목, 건축, 의료기기 등으로도 용도가 확대될 전망이다.
탄소섬유도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독일 아헨 공대 전문가인 메르스만에 따르면 탄소섬유 시장은 2013~2018년까지 연간 12% 고성장이 전망된다. 독일 탄소복합재료 산악연합회인 CCeV는 탄소섬유 수요는 2015년에 이미 생산용량을 완전히 충족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2050년까지 50만톤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분야별로는 약간 다르지만 항공산업 부문에서도 탄소섬유 소재는 온실가스 방출절감 뿐 아니라 추가적재 등의 이점으로 충분한 잠재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해상풍력발전 등에서도 잠재성이 높아 2019년까지 우주항공산업 분야에서 탄소섬유 수요가 3배 이상, 풍력에너지산업의 경우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기술 진보나 낙관적인 시장 전망에도 소재가공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BMW 탄소강화섬플라스틱 한 전문가는 현재 공정에 10분이 소요되는데 이를 한 자릿수 시간으로 단축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하나 과제는 제품 개발이다. 탄소 소재는 강철이나 알루미늄과 달리 가공 후 보정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약간의 실수에도 제조품이 쓸모없게 될 수 있다. 이런 기술적 난제 외에도 소재에 맞는 디자인 미비와 전문 인력 부족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가공상의 기술적 난제와 높은 생산비용에 따른 업계 부담에도 탄소섬유는 여전히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미래의 가능성 있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다만 탄소섬유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첨단 소재인 만큼 세계 탄소시장 판도를 쥐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독일· 중국 등 소수 업체만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탄소섬유 조기 산업화를 위한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11년 세계 탄소시장 점유율 1위인 일본 도레이첨단소재가 한국 내 생산 공정 설립을 결정했다. 현재 연산 2200톤 규모의 경북 구미공장 1호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지난해 6월 2500톤 규모의 두 번째 생산라인 건설 공사를 시작했으며 향후 관련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최근 삼성도 탄소섬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석유화학은 지난 7월 독일 SGL그룹과 탄소섬유와 복합소재 사업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앞서 진출한 태광·효성·SK·GS·도레이첨단소재와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석유화학은 합작법인을 통해 항공, 스포츠 분야는 물론이고 최근 주목받는 자동차 부품, 풍력 블레이드, 전자제품 등에 사용되는 경량화 소재를 타깃으로 잡을 계획이다. 주요 판매 제품은 탄소섬유와 다양한 스펙과 형태의 프리프레그(Prepreg), 복합소재 등이다.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한 태광산업은 탄소섬유의 원료에서부터 완제품까지 수직계열화를 갖추고 지난해 3월 양산을 시작했다. 울산공장 연간 생산 능력은 프리커서 3000톤, 탄소섬유 1500톤이다. 효성도 지난 5월부터 전북 전주공장에서 연산 2000톤 규모의 고성능 탄소섬유를 양산 중이다.
2020년까지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탄소섬유 생산 능력을 1만7000톤까지 확대하며 탄소섬유 시장의 선도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SK케미칼은 미쓰비시와 함께 산업용 프리프레그를 공동개발해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프리프레그는 섬유 강화 복합재료용의 중간 기재로, 미쓰비시가 SK케미칼에 탄소섬유를 공급하고 SK케미칼이 프리프레그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GS칼텍스도 지난 4월 활성탄소섬유 생산공정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부터 시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