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이 빅데이터 관련 개념검증(PoC) 작업을 많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PoC를 단순히 기능 구현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수준까지 요구하고 있다. 비용 부담은 전부 공급업체의 몫이다. 공급업체 부담이 늘어나면서 최근 무료 PoC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글로벌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턱없이 부족한 국내기업은 무료 PoC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독약`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원래 PoC는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신제품에 대한 사전 검증 개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IT 업계에서는 제품이나 기술, 정보시스템 등이 기업 조직의 특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용도로 진행되고 있다.
빅데이터의 경우 그동안 활용해본 경험이 없던 `빅데이터`로 비즈니스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PoC로 진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우리나라는 PoC를 진행하기 전 갑을 양사 간 합의된 의무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갑의 의도에 을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관례로 됐다”고 설명했다.
◇무료 PoC, 발주자·공급업체 모두에 “도움 안돼”
올해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성전자 빅데이터 PoC에도 5개 기업이 경합을 벌였다. 한 기업당 4~5개의 협력업체 20여명이 참여, 평균 2개월 넘게 삼성전자의 PoC 준비에 매달렸다. 기업당 인력비용으로만 2억원이 넘게 든 셈이다. 글로벌업체뿐만 아니라 PoC에 참여한 국내 협력업체들도 아무런 대가 없이 참여했다. 표준 시스템으로 선정된 한국오라클과 같이 협력한 업체들은 향후 본사업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챙길 수 있겠지만 다른 기업들은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을 날렸다.
한 국내 컨설팅업체는 당분간 대기업 빅데이터 PoC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지난 한두 해 동안 너무 많이 시달린 탓에 회사가 위태로운 상황까지 내몰렸기 때문이다.
무료 PoC는 단순히 비용적인 측면에서 폐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료로 진행하다 보니 발주기업은 내부 핵심 데이터의 제공을 꺼리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예도 많다. 무료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성의`가 없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특히 빅데이터와 같은 새로운 분야는 어떤 일로 무엇을 기대하는지, 가능성은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이해와 계획 없이 PoC를 추진하는 예가 다반사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국내에서 무료 PoC가 문제되는 또다른 배경에는 PoC가 벤치마크테스트(BMT)와 같은 성격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BMT라 불리던 작업이 최근에는 PoC로 불릴 정도로, PoC가 업체 및 솔루션을 선택하기 위한 평가자료를 만들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 심각한 것은 솔루션업체들이 솔루션 PoC를 위해 하드웨어를 구해야 하는 경우다. 일부 발주기업에서 하드웨어 비용까지 참여업체에 전가한 적이 있어 몇몇 국내 솔루션기업이 PoC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PoC, 일부분이라도 유료화해야…공공에 도입 필요
업계는 현실적으로 무료 PoC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PoC는 유료화하지 않더라도 일부분에는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PoC의 개념과 범위를 규정해 한도 내에서 검증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상의 요구는 반드시 유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일반기업은 힘들더라도 공공 분야에서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유료로 진행될 수 있도록 법제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적은 금액이라도 유료로 한다면 발주기관·공급업체 모두 최선을 다해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발주기관이 PoC의 규모에 맞는 기본적인 기기, 인력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고 PoC에 지원을 강화한다면 PoC는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시작단계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공공기관이 유료로 진행한다면 좋은 모범사례로서 시장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oC 실시 전 발주자와 공급업체 간 특정 조건에 합의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준수하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정에 없던 기능 추가 등으로 PoC 기간이 계속 지연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무료 PoC 방식보다는 공급업체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인식해 PoC를 비즈니스의 초기 투자단계로 포함시켜 유료 컨설팅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PoC와 BMT의 차이
자료:업계 종합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