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국무총리가 중저음의 탁하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컴퓨터 2000년 표기문제(Y2K)는 올해 안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사항입니다. 인력과 자금을 최대한 지원하고 현장을 직접 확인해 만반의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1999년 1월 14일 오전 10시.
김 총리가 서울 정부종합청사 회의실에서 첫 Y2K 관계 장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였다. 관계 장관들은 김 총리 지시사항을 열심히 수첩에 메모했다.
정부는 새해벽두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Y2K 관계 장관 회의를 구성했다.
국무총리가 Y2K문제 해결 선두에 선 것이다. 위원은 재경경제부 장관과 정보통신부 장관, 과학기술부 장관, 행정자치부 장관, 국방부 장관, 산업자원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환경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해양수산부 장관, 금융감독위원장, 국무조정실장, 중소기업청장, 한국은행 총재로 구성했다.
그 첫 회의에는 김정길 행자부 장관(청와대 정무수석, 대한체육회장 역임), 이해찬 교육부 장관(국무총리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 강창희 과기부 장관(현 국회의장), 박태영 산자부 장관(작고, 전남도지사 역임), 남궁석 정통부 장관(작고, 16대 국회의원, 국회사무총장 역임), 이정무 건교부 장관(현 한국물포럼 총재), 김선길 해수부 장관(작고, 15대 국회의원 역임)과 추준석 중소기업청장(현 동아대 석좌교수) 등이 참석했다
정치 풍운아로 불리는 김 총리의 당시 위상은 대단했다. 김대중-김종필(DJP) 연대로 탄생한 김대중정부에서 김 총리는 공동정권의 한 축이었다. 그는 경제 분야 각료 추천권을 행사했고 각종 정책 결정에 적극 개입했다. 정통부 장관도 김 총리 추천 몫이었다. 장관들이 김 총리 지시사항을 수첩에 열심히 기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정통부 산하에 설치했던 Y2K대책반을 차관 직속의 `Y2K상황실`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또 매월 국무회의에서 Y2K문제 해결 추진상황을 직접 점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원자력·수력발전 등 분야별로 Y2K문제 해결과 관련한 비상계획을 조속히 수립하고 관리체계가 불명확한 민간발전소, 민간선박 등은 정부가 문제해결을 지원하는 대책도 수립했다.
이 자리에서 각 부처는 부문별 보완대책을 보고했다.
▲원전(과기부)=2월까지 비상계획 수립을 마치고, 6월까지 문제해결을 완료. 컴퓨터 전문가 및 원전계통 전문가로 `원전 Y2K추진 전문평가단`을 구성하고 Y2K문제 해결 추진과정을 지속적으로 확인.
▲수력발전 설비(건교부)=Y2K문제 해결을 6월까지 완료하고, 수동조작 등 비상계획 수립.
▲전력(산자부)=민간발전소는 한전의 기술협력 등으로 문제해결을 지원하고, 발전시설에 설치된 외산장비 기자재는 해외 공급업체와 협의해 문제 해결. 한·미, 한·일 협력회의 등 정보교류 활성화.
▲해운여객 안전(해수부)=국가 소유 선박은 6월까지 문제 해결, 민간선박 중 사고발생시 사회적 물의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여객선, 위험물 운반선은 정부가 직접 관리.
▲상하수도(행자부)=8월까지 문제해결 완료하고, 상하수도 자동제어 시스템은 수동조작 등 비상계획 조속히 수립.
▲중소기업(중기청)=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으로 `Y2K종합지원반`을 구성하고 지방 중소기업청에 `Y2K 현장지원반` 구성. Y2K문제 적극 대응 중소기업에 확인서 발부, 자금지원 우대, KS마크 등 품질인증시 가산점 부여 방안 검토.
이후 김 총리는 Y2K 관계 장관 회의를 정기적으로 열어 현안을 점검하고 대책을 지시했다.
정통부는 곧장 그동안 과장이 책임자인 Y2K대책반을 국장이 실장인 Y2K상황실로 확대 개편했다.
신순식 당시 Y2K대책반장(전남·부산체신청장,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부회장 역임)의 말.
“총리실에서 정통부로 복귀해 대책반장으로 일하면서 안병엽 차관(정통부 장관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에게 Y2K정책 실무를 총괄하는 Y2K상황실 설치를 건의했습니다. 안 차관이 관련 부처 국장회의를 소집해 이 안을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 안을 Y2K 관계 장관 회의에 상정해 통과시켰습니다. 상황실 설치 후 나는 Y2K업무에서 빠졌습니다.”
정통부에 설치한 Y2K상황실은 실장인 국장 아래 총괄팀과 관리1팀, 관리2팀, 지원팀 4개 팀으로 구성했다. 팀장은 과장급이 맡았다. 총괄팀은 Y2K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관리1·2팀은 13개 중점 분야 추진실태를 관리하며, 지원팀은 홍보와 국제협력을 담당했다.
Y2K상황실 초대 실장은 신영수 국장(한국무선국관리사업단 이사장 역임)이 1999년 10월까지 일했고 그 이후에는 류필계 국장(정통부 정책홍보관리본부장 역임, 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이 맡았다.
총괄팀은 서광현 정통부 서기관(지경부 기술표준원장 역임)이 팀장을 맡고 총괄담당에 서선일 정통부 사무관(현 변호사), 기획담당 양청삼 정통부 사무관(현 미래부 거대공공조정과장)이 일했다. 관리1팀장은 김경섭 행자부 서기관(정부통합전산센터장 역임, 현 한국정보화진흥원 부원장) 아래 중점 분야 담당에 이도규 정통부 사무관(현 ITU전권회의추진단 기획총괄과장)이 근무했다. 관리2팀장은 정완용 정통부 서기관(현 서울전파관리소장)과 원영준 산자부 사무관(현 중기청 혁신지원과장)이 일했다. 지원팀장은 홍필기 한국전산원 선임연구원이 담당했다.
상황실은 국가 전반의 Y2K문제 해결 대책을 수립하고 금융과 전력, 통신 등 13 개 중점 분야 추진상황을 국무회의와 Y2K 관계 장관 회의에 보고했다.
서광현 당시 총괄팀장의 말.
“전파연구소 통신기술담당관으로 일하다 1999년 3월 상황실로 발령받았습니다. 상황실을 별도로 마련하고 그 곳에서 실장과 팀원이 Y2K업무에 집중했습니다. 쉴 틈이 없었어요. 추진상황을 수시로 국무총리실에 보고하고 회의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앞서 1월 12일 오후.
Y2K 인증을 담당할 한국Y2K인증센터가 이날 서울 서초동 강남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정식 업무에 들어갔다. 현판식에는 남궁석 정통부 장관과 박성득 한국전산원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협회장), 한준호 산자부 기획관리실장(중소기업청장 역임, 현 삼천리 회장), 정장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장(현 마루홀딩스 회장),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현 통신위성우주산업연구회 고문) 등 관계자 130여명이 참석했다.
Y2K인증센터는 이석호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관련 전문가 16명으로 인증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해 3월 4일.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과기부 장관, 대한변리사회장 역임) 등 여야 의원 27명은 정부의 Y2K문제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예산 및 입법지원 활동 등을 위한 `Y2K대책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안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국회는 그 해 12월 31일 2000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갖는 Y2K에 관한 촉진법을 제정했다.
정치권도 Y2K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한나라당은 3월 11일 오전 여의도당사에서 당 정책위 산하 정보통신위(위원장 김형오(국회의장 역임) 주관으로 Y2K정책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회창 총재(국무총리, 감사원장 역임), 이상득 정책위 의장(국회부의장 역임) 등이 참석해 민간 부문의 Y2K 준비실태 및 정부의 해결 지원대책 등을 논의했다.
자민련은 6월 21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Y2K 해결을 위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박태준 총재(작고, 포철 회장, 국무총리 역임) 등 자민련 당직자들과 남궁석 정통부 장관, 정해주 국무조정실장(통상산업부 장관 역임, 현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이사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정통부는 4월부터 6월까지 Y2K 전국순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6월부터는 매월 주관 부처별로 13개 중점 분야 추진실태를 점검했고, 민간도 대책 마련에 총력전을 폈다.
그 해 9월 2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정통부 국정감사에서 이태섭(과기처 장관, 정무1장관 역임), 유용태(노동부 장관 역임), 이상희 의원 등이 Y2K인증제도에 대해 질의했다.
그러나 Y2K질의는 이튿날인 9월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의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대한 국감에서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이날 오전 10시 박우병 위원장이 국감 시작을 선언하자 여야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Y2K문제 대책을 따져 물었다.
다음은 국회 회의록에 나타난 의원들의 질의 내용.
▲김형오 의원=미국의 컨설팅업체인 SPR는 `아무리 완벽하게 Y2K를 해결해도 10%의 문제 발생 가능성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우리는 Y2K에 대해 안전한지 이에 대한 전산원의 입장과 비상조치 계획을 밝히라.
▲이상희 의원은=Y2K로 인한 법적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Y2K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특히 컴퓨터 전공자들에게 병역복무 대신 Y2K를 연구하게 하는 `Y2K예비군`을 육성, 비상사태 시 즉각 동원하도록 해야 한다.
▲조웅규 의원=Y2K 인증심사 기간이 평균 5~6일이고, 사실심사보다 문서심사에 치중했으며 문제가 생기더라도 인증기관은 법적 책임이 없도록 돼 있다. 인증기관이 상업적으로 인증을 남발했다는 의혹이 있다. Y2K 인증의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
▲유용태 의원=대기업이나 국가기관과 달리 중소기업은 Y2K에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다. 법적 책임도 없다. 중소기업 Y2K 해결 지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
▲김영환 의원(과기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Y2K 해결을 빙자한 바이러스 유포 및 해킹과 정보 혼란 등도 걱정이다.
답변에 나선 박성득 한국전산원장은 “정부는 1998년부터 금융, 원전, 전력 및 에너지 등 13개 중점관리 분야를 설정, Y2K 해결에 나서 올 8월 말 현재 97% 이상 조치를 취했다”면서 “주관기관별로 비상 모의훈련을 실시했고 정통부 Y2K상황실을 중심으로 정부 각 부처와 기관이 Y2K문제 방지를 위한 총력작업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밀레니엄 버그 발생 3개월을 앞둔 당시 Y2K 키워드는 철저한 대책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