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경매에 대한 단상, 그리고 미래의 통신 네트워크

주파수 경매에 대한 단상, 그리고 미래의 통신 네트워크

최근 주파수 경매가 진행되는 가운데, 입찰가가 2조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렇게까지 큰 돈을 들여 이동통신사들이 주파수 입찰에 참여하는 것은 그만큼 오늘날의 세계에서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네트워크가 컴퓨터를 위한 트래픽와 음성 통화, 그리고 TV등을 위한 콘텐츠를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다면, 미래에는 콘텐츠와 사람들의 소통, 그리고 다양한 가전제품과 빌딩,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물체들이 포괄된 네트워크가 될 것이다.

2012년 2월 시스코시스템즈는 향후 5년간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을 전망한 보고서에서, 2016년까지 전세계 모바일 트래픽이 올해보다 18배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바일 트래픽의 증가세가 급격한 이유는 단말기의 급속한 증가가 가장 큰 이유다. 2016년 전세계 인구를 73억명으로 볼 때, 인터넷 연결 모바일 기기는 100억 개를 훌쩍 넘게 된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 뿐 아니라 앞으로는 사물통신(M2M) 모듈의 증가도 이런 트래픽 폭증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이다. 이런 트래픽 폭증에 대처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려고 이동통신사들이 이렇게 거액을 쏟아붓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변화는 더욱 빠른 네트워크 기술과 다양한 종류의 트래픽 양이 증가하는 것보다, 통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할 듯 싶다. 기존의 통신사가 가졌던 음성통화 서비스와 인터넷 접속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15년 이후의 미래의 통신과 네트워크 산업은 어떤 변화를 가지게 될까?

현재와 같은 트래픽 폭증 현상이 지속될 경우, 각각의 이동통신사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신사간 주파수 공용화”와 같은 새로운 정책과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통신기술이 등장할 가능성과 이를 통한 전반적인 통신 인프라 비용의 감소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또한, 조금 더 미래 지향적인 시각에서는 현재의 이동통신사와 같은 중앙집중적인 인프라를 제공하는 사업자들의 독점시대가 끝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물론 앞으로도 잘 관리되고, 신뢰성이 중요한 B2B 시장이나 높은 프리미엄 퀄리티를 보장하는 서비스의 경우에 소수의 이동통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 모델이 건재하겠지만, 지금과 같이 완전히 독점적인 틀에서 사업을 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만약 여러 주파수 대역를 지원하는 단말기가 있고 주변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단말기와 통신하기 위해 비어있는 주파수 대역을 실시간으로 찾아낸다면 어떨까? 비어있는 대역을 연결하고 이 때 주파수를 복수로 연결할 수 있는 ‘메쉬’ 방식의 다양한 주파수 대역을 활용한 이동통신 네트워크가 탄생할 수 있다. 프로토콜만 통일한다면 굳이 중앙 집중적인 통신사업자가 없어도 통신 인프라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미 이와 유사한 접근방식이 여러 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잘라라바드씨는 우리 주변에서 버려지는 다양한 폐품을 활용해서 오픈소스 무선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저비용 저파워 셀룰러 데이터 네트워크 기술’로 명명된 이 기술은 커티스 하이멀(Kurtis Heimerl) 버클리 대학교 교수가 좀 더 산업적인 차원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완료했다. 저전력 유럽형 2.5세대 이동통신(GSM)을 지원하는 빌리지 베이스 스테이션(Village Base Station)이라는 기기를 기반으로 하는 이 기술은 실제로 미국에서 테스트도 수행 했는데 결과가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이 중계기는 저전력 기기라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유지가 가능하며 GSM 방식을 통한 음성통화 뿐만 아니라 데이터 서비스도 지원한다. 시골 같은 곳에 저렴한 무선 데이터 네트워크를 간단히 구성할 수 있다.

빌리지 베이스 스테이션 (http://goo.gl/g9evJ)
빌리지 베이스 스테이션 (http://goo.gl/g9evJ)

구글은 하늘 위에 기구를 띄워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전세계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 룬(Project Loon)을 시작했다. 지름 15m의 큼직한 풍선들을 고도 20km 높이에서 날아다니면서 각각의 기구가 중계기 역할을 해 인터넷을 서비스한다. 당장의 기술수준은 그리 빠른 속도를 제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유선이나 무선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저개발국을 타깃으로 생각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갑작스런 재해 상황 등에서도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이 인터넷 TCP/IP 프로토콜을 창시한 빈트 서프를 앞세워 행성간 인터넷 프로토콜(Interplanetary Internet Protocol)을 만들고 표준화를 진행하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프로젝트 룬의 진행과 연결시켜 본다면 현재의 지상의 기지국을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글로벌 이동통신 네트워크와 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할 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룬의 풍선
프로젝트 룬의 풍선

앞으로 통신과 네트워크 사업자는 단순히 국가에 엄청난 돈을 내고, 투자금액을 뽑기 위해 독점사업을 하는 사업의 전개방식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쟁체제로 돌입할 것에 항상 대비할 필요가 있다. 주파수라는 국가가 가진 소중한 공공재를 경매를 통해 독점사업권을 주고 국가의 수입을 확보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미래를 대비해 새로운 혁신 기술의 개발과 비즈니스 모델을 시험해보고, 국제표준화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노력을 펼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정지훈 객원기자 jihoon.jeong@gmail.com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

대한민국 미래 비전 전략가 중 손꼽히는 1인. 각종 언론으로부터 주목할 미래학자, 미래지식인으로 선정됐으며 정부 기관과 수많은 기업체에서 미래 트렌드와 전략에 대해 자문한다.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에서 보건정책관리학 석사를, 미국 남가주 대학(USC)에서 의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우리들병원 생명과학기술연구소장을 거쳐 현재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로 일한다. 의대 출신의 미래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저자는 파워블로그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운영자로 다양한 전문 지식을 연결하는 칼럼들을 선보이며 막강한 팬층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