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49>밀레니엄 버그 전쟁(4)

1999년 11월 2일 오전 청와대 세종실.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작고,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의장, 국회 사무총장 역임)은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컴퓨터 2000년 표기문제(Y2K) 국민 대처요령`을 보고했다.

1999년 12월 29일 오후 정보통신부 대회의실에서 Y2K정부종합상황실 현판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안병엽 상황실장, 남궁석 장관, 정해주 국무조정실장, 박성득 한국전산원장, 정장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장. <연합뉴스>
1999년 12월 29일 오후 정보통신부 대회의실에서 Y2K정부종합상황실 현판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안병엽 상황실장, 남궁석 장관, 정해주 국무조정실장, 박성득 한국전산원장, 정장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장. <연합뉴스>

“Y2K 국민 대처요령을 마련해 Y2K에 따른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하겠습니다.”

“완벽한 대비책을 강구하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연말까지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Y2K로 인한 혼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김 대통령은 남궁 장관의 보고에 거듭 `유비무환(有備無患)`을 당부했다.

남궁 장관은 국무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지난 1997년부터 금융과 전력, 통신, 운송 등 13개 분야를 중점 관리대상으로 지정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전력과 통신, 에너지 등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Y2K 문제에 낙관은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불안해할 이유도 없으며 국민이 Y2K에 대응할 수 있는 10대 점검사항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남궁 장관은 Y2K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점검해야 할 사항을 발표했다. 정부가 당시 내놓은 10대 점검사항은 다음과 같다.

△연말연시에 꼭 필요한 현금만 인출한다.

△12월 말에 의료기관을 이용할 경우 Y2K 문제 해결 여부를 확인한다.

△영유아, 노약자를 위해 세심한 준비를 한다.

△해외여행 계획 시 방문하는 곳의 Y2K 문제를 염두에 둔다.

△아파트 등 대형 건축물에 설치된 각종 자동화설비와 Y2K 문제 해결 여부를 확인한다.

△PC의 Y2K 문제는 다시 한 번 점검한다.

△Y2K 문제에 편승한 컴퓨터 바이러스를 조심한다.

△가정용 전자제품 중 날짜 표시기능이 있는 제품은 2000년이 제대로 표시되는지 확인한다.

△중소기업은 컴퓨터 및 각종 자동화설비의 Y2K 문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한다.

△Y2K 문제를 빙자한 각종 사기행위에 주의한다.

정부는 이후 Y2K 국민 대처요령을 만화로 제작, 배포하고 합동 현장점검과 Y2K 캠페인, 순회 세미나를 개최해 국민의 경각심을 높였다. 또 통신과 전력 등 13대 중점 분야 주관 부처별 사전 대비책 마련에 만전을 기했다.

그해 12월 20일 오전 11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 1035명의 컴퓨터 전문가로 구성된 `Y2K 119 기술지원단`이 발대식을 갖고 출범했다. 지원단은 2000년 1월 15일까지 Y2K 문제해결 기술을 지원했다.

지원단은 삼성SDS, 현대정보기술, LG-EDS, 포스데이타 등 38개 SI업체와 삼보컴퓨터, 현대멀티캡, 한국IBM 등 8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업체에서 선발한 전문가로 구성했다.

지원단은 단장 아래 상황실장과 행정지원팀·운영팀으로 역할을 분담해 24시간 비상대기하면서 Y2K 문제 발생업체에 무료 기술지원 활동을 벌였다.

지원단은 전자신문과 동아일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후원했으며 손융기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부회장(전남체신청장 역임)이 단장을 맡았다. 지원단은 산하에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5개 지역에 상황실을 설치했다.

그해 12월 28일.

정통부는 13대 중점 분야별 가상 시나리오에 따라 574개 기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차원의 Y2K 대응 종합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사실상 최종점검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정부는 훈련 결과를 토대로 기관별 보완책을 마련하도록 조치했다.

이 훈련에는 정부 부처와 세계적인 Y2K 비상연락망을 갖춘 다국적기업(IBM, 오라클, 선마이크로시스템스), 한국정보보호센터, 컴퓨터바이러스 백신업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 PC통신업체, Y2K 119 기술지원단, 4대 그룹(삼성, 현대, LG, SK), Y2K상황실 등이 대거 참여했다

훈련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문제 발생 상황을 국내 유관기관에 전파해 사전에 대처하는 과정 △중점 관리대상 기관에서 발생한 문제 상황을 Y2K 정부종합상황실, 중점 분야 비상대책반, Y2K 119 기술지원단, 재난 관련기관 등 유관기관과 협조, 해결하는 과정 △중점 분야 및 민간기업에서 발생한 Y2K 문제를 상호 간에 전파해 유관기관에서 사전 대처하는 과정 △Y2K 관련 바이러스 및 해킹 발생을 가정하고 한국정보보호센터 비상대응반에서 접수해 백신을 개발, 일반인에게 배포하는 과정 등으로 진행했다. 이날 훈련은 비록 모의였지만 실제 상황을 방불케 했다.

그해 12월 29일 오후.

정부는 이날부터 Y2K 비상대응 체제로 전환했다. 정부는 이날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 15층 대회의실에서 Y2K 정부종합상황실(실장 안병엽 정보통신부 차관) 현판식을 갖고 2000년 1월 4일 오후까지 24시간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현판식에는 남궁석 정통부 장관과 정해주 국무조정실장, 박성득 한국전산원장, 정장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장, 안병엽 Y2K종합상황실장(정통부 장관, 국회의원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 등이 참석했다.

Y2K정부종합상황실은 각 부처에서 인력이 파견됐고 상황관리반과 기술지원반, 언론홍보반의 3개 반으로 구성했다. 대통령비서실과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Y2K 119 지원단 등과 핫라인을 구축했다.

정부는 금융과 전력, 에너지, 통신, 원전, 운송 등 13개 중점 분야 주관부처와 산하기관별로 비상대책반을 운영하고 공공 부문에서 37만여명이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또 시도 및 시·군·구는 재난 긴급구조 상황실을 운영하고 주요 관리 대상기관과 유관단체도 대책반을 구성했다.

안병엽 정통부 차관(상황실장)의 회고.

“이날부터 24시간 비상근무에 들어갔습니다. 일종의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당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모든 직원이 자리를 비울 수 없었습니다.”

그해 12월 31일 밤 9시.

한 해 마감을 4시간여 앞둔 시간에 김종필 국무총리가 Y2K정부종합상황실을 방문, Y2K로 인해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히 대처해줄 것을 지시했다.

김 총리는 “정부가 지난 3년 동안 민간과 합동으로 Y2K 문제에 대비해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며 “그러나 처음 겪는 경험인 만큼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컴퓨터 바이러스와 해킹에도 철저히 대비해 줄 것을 당부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안병엽 Y2K정부종합상황실장은 김 총리에게 △Y2K 상황관리체계 △Y2K 긴급지원체계 △문제발생 시 대응절차 등을 보고했다.

이에 앞서 오후 3시께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감사원장, 국무총리 역임)가 Y2K정부종합상황실을 방문, 철저한 대비를 당부했다.

2000년을 1분여 앞둔 1999년 12월 31일 밤 11시 59분.

Y2K정부종합상황실은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재깍재깍`

2000년 1월 1일 0시.

상황실 직원들이 즉시 13대 중점 분야별 이상 유무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통신과 한국전력 등 전국 600여개 주요 기관을 인터넷으로 연결한 상황관리 시스템과 각 부처를 전용회선으로 연결해 정상운영 여부를 확인했다.

“이상 있습니까.”

“지금 확인 중입니다.”

2000년 1월 1일 0시 11분.

긴장 속에 첫 보고가 접수됐다. 전국 철도가 정상 운행 중이라는 보고였다. 이어 건설교통부가 항공과 지하철이 이상 없다고 확인했다. 과학기술부로부터 전국 원전 16기가 정상이라는 낭보가 접수됐다. 부처별로 문제없다는 보고가 속속 들어왔다.

상황실 직원들의 머릿속에서 하얀빛이 터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전기와 통신, 의료, 교통 등 사회 기간서비스 분야에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2000년 시작과 함께 그토록 전 세계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했던 디지털 재앙은 나타나지 않았다.

남궁 장관이 기자실로 내려왔다.

“통신과 전력, 원전, 수도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중점 분야는 이상이 없습니다. Y2K 대란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안병엽 차관의 말.

“즉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로 이상 없음을 보고했습니다. 당시 사소한 사고는 몇 건 있었는데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습니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해 1월 2일 오후.

안병엽 차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통신·운송·원전 등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13대 중점 분야가 Y2K 문제없이 모두 정상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기업과 민간, 정부가 함께 노력한 덕분에 국민이 염려했던 Y2K 문제가 이처럼 아무런 사고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해 연휴가 끝난 1월 4일 오후.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 4시를 기해 Y2K(밀레니엄 버그) 비상대응상황을 공식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Y2K정부종합상황실이 설치된 지 6일 만이었다.

남궁 장관은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 전력, 통신 등 13대 중점 분야의 Y2K 문제를 별 사고 없이 해결했다”며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실시한 정부의 비상상황 대응체제를 해제한다”고 선언했다.

남궁 장관은 “일각에서 Y2K 문제에 과잉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으나 컴퓨터 종사자들의 정성어린 노력 덕분과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Y2K 119 기술지원단이 잘 대처해 준 덕분에 잘 해결했다”고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Y2K 문제라는 3년여의 공포 대하드라마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시한폭탄이 사라진 2000년 1월의 붉은 태양은 인류에게 희망과 환희의 빛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