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내리쬐고 아스팔트엔 열기가 이글거렸다. 기온 섭씨 30도, 70%가 넘는 습도를 넘나드는 날씨. 가만히 있어도 더운 바람 탓에 땀이 난다. 그럼에도 우주복 같은 두툼한 옷을 입고 장갑에 헬멧까지 쓴 선수들이 에어컨도 없는 경주차에 몸을 싣는다. 표정도 꽤나 밝다. 더위를 가르는 승부사, 카레이서들이 이토록 즐겁게 차에 오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본 스즈카 서킷의 미디어 전용 버스를 타고 트랙을 둘러봤다.
이곳의 정식명칭은 ‘스즈카국제경주코스(Suzuka International Racing Course)’다. 일본 미에현(三重縣) 스즈카(鈴鹿)에 자리했으며, 길이는 5.807km, 폭은 10~16m에 달한다. 코너는 총 17개, 포뮬러원 일본 그랑프리에선 서킷 55바퀴를 돌아야 한다. 아시아 최초의 국제 규격 서킷을 목표로, 1962년 존 후겐홀츠(John Hugenholtz)가 혼다테스트트랙으로 설계했다. 구조는 독특함을 뽐내는 8개 레이아웃으로 이뤄졌으며, 코스가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다. F1 서킷 중 유일하게 입체 교차 코스가 있다. 현재 스즈카 서킷은 모빌리티랜드(Mobilityland)가 운영을 맡고 있으며, 이곳은 혼다기연공업(本田技硏工業)의 자회사다.
스즈카 서킷 코너는 각각의 이름이 있다. 스타트라인을 지나 연속해 만나는 코너의 이름은 ‘퍼스트 커브’와 ‘세컨드 커브’ 말 그대로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선 구간이다. 다음엔 짧은 코너가 이어지는데 ‘S’ 커브 구간이다. 이후 드라이버들의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역뱅크 코스 ‘갸쿠 뱅크’ 구간을 지나면 ‘던롭 커브’로 이어진다. 던롭 브랜드의 배너(광고)가 걸려있는 곳이다.
이후 ‘데그너 커브’를 마주하게 된다. 유명한 바이크 선수였던 데그너가 스핀하며 큰 사고가 난 탓에 이슈가 됐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붙였다. 까다로운 구간으로 불린다. 이어 입체 교차점을 통과하면 머리핀처럼 뾰족하다고 해서 붙여진 ‘헤어핀’ 코스를 지나 완만한 곡선구간을 빠르게 내달릴 수 있다. 다음으론 숟가락처럼 생긴 ‘스푼 커브’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곳 공략을 실패하면 최고속도를 내기 어려워진다. 직선 구간에선 F1머신의 경우 시속 300km까지 달릴 수 있으며, 바로 이어지는 130R이라는 고속 코너 구간을 지난다. 쉬워 보이지만 꽤 까다로운 곳으로 꼽힌다.
마지막 코너를 앞둔 시점엔 서킷 유일 시케인 구간이 나온다. 카시오 트라이앵글(Casio Triangle)이라 부르는 곳으로, 짧고 각이 큰 코너가 이어지기에 추월이 주로 이곳에서 벌어진다. 피니시라인에 도달하기 전, ‘라스트 커브’라는 이름의 마지막 코스를 통과한다. 직선주로는 내리막으로 최고시속 260km쯤까지 낼 수 있는 곳이다.
이번엔 경주장 시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펴봤다. 미로처럼 얽힌 것처럼 보이는 건물 통로는 미디어센터를 비롯, 주요 시설과 이어지며 일반인들의 출입이 어렵게 설계됐다. 패독(Paddock)은 허가 받은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경주를 관람할 수 있는 의자와 식음료가 제공되는 홀로 구성됐다.
반면, 서킷과 패독을 이어주는 통로, 메인 그랜드 스탠드에서 트랙으로 내려오는 통로 등 사람을 배려한 여러 시설은 이용하기 편리했다. 감동적이었다. 규모가 워낙 큰 시설이다 보니 이런 사소한 점 하나가 피로감을 덜어주고 경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스즈카 서킷의 시설뿐만 아니라 운영 시스템도 ‘환상적’이었다. 어느 곳 하나 불편함이 없도록 인력이 배치된다. 그리고 무언가 요구하면 바로 처리해준다. 무엇보다 놀란 건 서킷을 둘러보기 전에 서킷 브리핑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코스 소개를 넘어 서킷을 적극 홍보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 브리핑은 서킷을 취재하려는 사람이라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며, 서킷 이용법과 제한구역, 포토존 안내 등의 순서로 교육이 진행됐다.
재미있는 건 기자들의 서킷 내 이동수단이다. 미디어용 버스가 경기와 경기 사이에 트랙 위를 한 바퀴 돈다. 이때 기자들은 트랙 위에 서 있어야 차를 탈 수 있다. 물론, 미리 허가 받은 제한된 사람만 가능하다.
스즈카 서킷이 왜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F1 서킷이 있다. 그렇지만 시설 면에선 비슷할 지 모르나, 운영 면에선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 도입과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런 시설을 오랜 시간 이용해왔고, 꾸준히 관리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서 감동 받을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메인그랜드스탠드 외에도 서킷 곳곳의 관람석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관람객들의 모습도 문득 떠오른다. 아무데서나 레이스를 볼 수 있다니, 진심으로 부러웠다.
이곳에서 펼쳐진 CJ헬로비전 슈퍼레이스 5라운드 참가 선수들과의 대화에선 느껴지는 점이 많았다. 특히 게임에서나 달릴 수 있는, 이른바 `꿈의 서킷`이라 부르던 곳을 자신들이 직접 차를 몰고 트랙을 돈다니 이보다 더한 감동이 어디있을까 싶다.
앞으론 외국 선수들에게도 국내 서킷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우리나라의 자동차 그리고 모터스포츠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길 기대해 본다.
스즈카(일본)=박찬규 RPM9 기자 st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