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의 별명은 `슈퍼 을(乙)`이다. 삼성전자, 애플 등 글로벌 제조사들이 제품 출시를 위해 가장 눈치를 보는 협력사라는 의미다. 퀄컴 제품을 얻지 못하면 이들 제조사는 출시 일정을 변경해야 할 정도니 독보적인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퀄컴이 따라가기 어려운 저력을 갖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설립 이래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다른 건 줄여도 연구개발(R&D)만은 놓지 않은 덕이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의 20% 이상을 꾸준히 R&D에 투자해 왔다.
◇연이은 위기, 글로벌 특허전쟁이 터졌다
퀄컴에도 위기는 있었다. 퀄컴은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노키아, 브로드컴 등 글로벌 통신기업과 대대적인 특허 소송을 치렀다.
2005년 퀄컴은 노키아와 특허 소송을 시작했다. 퀄컴이 노키아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해당 특허가 사용된 단말기 판매가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양사는 그동안 상호 교차 라이선스를 맺고 서로의 이동통신 특허 기술을 사용해 왔으나 노키아가 퀄컴이 요구하는 로열티가 너무 많다며 2007년 4월 계약 종료에 앞서 소송을 냈다.
퀄컴은 노키아가 새로운 라이선스 협약에 응하지 않으면 특허 위반 혐의로 노키아 단말기 판매를 중단하도록 요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싸움은 결국 퀄컴의 승리로 끝났다. 각국 법원에서 진행해오던 특허 라이선스와 관련한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폴 제이콥스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합의는 퀄컴의 가치를 높일 뿐만 아니라 관련 업종의 많은 기업들에 보다 발전된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로드컴과의 분쟁은 노키아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렀다. 지난 2005~2006년에 걸쳐 브로드컴은 자사의 CDMA 특허를 퀄컴이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퀄컴의 베이스밴드 칩세트를 사용한 단말기 수입을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
양사는 지난 2005년 7월과 2006년 3월 3세대(G) 휴대폰과 관련된 특허 공방을 벌였다. 당시 퀄컴은 브로드컴이 자사의 기술 특허 4개를 침해했다며 고소했고 브로드컴도 퀄컴이 자사 기술 특허 6개를 침해했다며 맞섰다.
이후 브로드컴은 퀄컴의 `EVDO` 칩세트에 내장된 전력사용 조절 기술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다시금 공세를 퍼부었다. 브로드컴은 퀄컴의 EVDO 관련 칩세트의 미국 수입 금지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결국 퀄컴이 무려 4조원가량을 투자해 브로드컴의 해당 특허를 사들이면서 마무리했다.
◇위기 속에 빛난 R&D 투자
퀄컴은 연이은 소송에도 지속적으로 R&D 투자액을 늘려왔다. 퀄컴의 R&D 투자는 주로 무선 제품과 서비스에 이뤄진다. 소비자 가전과 컴퓨팅 통합, 멀티밴드, 멀티모드, 멀티 네트워크 제품과 기술 컨버전스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된다.
3G CDMA 기술 개발과 상용화, OFDMA 기반으로 한 무선통신 기술은 R&D의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퀄컴의 기술력은 아낌없는 R&D 투자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퀄컴은 매년 평균 매출의 20% 이상을 R&D에 투자했다. 회계연도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약 220억달러를 R&D에 투자했다. 퀄컴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R&D 투자를 실행할 계획이다.
이는 여타 글로벌 IT기업 중에서도 단연 앞서는 투자규모다. 반도체 설계부터 판매까지 내부에서 해결하며 종합 전자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전자의 작년 R&D 투자율은 5.9%인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의 3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다. 액수의 절대치로 비교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퀄컴이 얼마나 과감하게 R&D에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퀄컴 관계자는 “퀄컴은 사방에서 특허 공격을 당할 때도 원천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R&D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본질`에 집중했기 때문에 회사에 닥친 위기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금액적인 투자 외에도 퀄컴은 세계적으로 R&D센터를 설립해 참신하고 획기적인 독립 프로젝트들을 운영한다. 현재 퀄컴 R&D센터는 미국 샌디에이고 본사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와 버클리 등 미국에만 5개가 있으며 한국과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중국, 인도 등 총 11개국에 설립돼 있다.
◇IT산업의 오늘을 이끈 기술들
`3G-4G 기술, 비광역통신망 기술, 사물인터넷, 모바일기기, 연결성 개선…`
퀄컴 R&D센터의 대표적인 성과다. 정보통신 산업사를 이끈 이정표이기도 하다. 제조사에 칩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칩 자체의 영향력으로 인해 고객이 물량을 받지 못해 안달을 내야 했다. 이를 가능케 한 퀄컴의 저력은 R&D센터의 연구결과 덕분이다.
퀄컴 R&D센터는 최근 들어 급성장하고 있는 사물 인터넷 분야 연구에 한창이다. 사용자가 다양한 종류의 전자 기기를 어디서든 연결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퀄컴은 특히 홈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사물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비광역통신망 기술은 시계와 냉장고처럼 인터넷이 가능한 서로 다른 기기끼리 알아서 연결될 수 있도록 근거리 무선통신 와이파이 기술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초당 1GB 이상으로 개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퀄컴 VS 삼성전자 R&D 투자율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