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제조업과 IT솔루션 개발.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이질적인 사업이지만 차후는 두 가지 사업을 성공적으로 버무렸다. 신창훈 차후 회장은 “제조기업이 IT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제조 분야에서 얻은 경험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차후는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동파이프 제조기업이다. 지난 2004년 설립해 현재 전국에 50개 지점, 270개 영업 대리점을 둔 강소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제조분야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며 이름을 알렸지만 신 회장은 한정적인 사업 아이템과 성장률 둔화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신 회장에게 변화를 재촉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신 회장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IT분야에 진출한 배경이다.
“꿈과 희망을 갖자. 회사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이라고 말했지만 습관적 구호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경영은 안정적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앞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죠.”
신 회장은 현재 차후 기술연구소 수장인 구승엽 대표를 영입했다. 국내외 IT기업에서 굵직한 성과를 낸 그의 경력을 알고 있던 차에 구 대표를 다짜고짜 찾아가 IT사업을 이끌어 달라고 제안했다.
“얼마동안 투자금을 까먹으면 수익이 발생하겠냐고 물었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IT 분야 사업의 어려움, 중소기업의 한계 등에 대해 말하더군요.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죠. 같이 해보자.”
이때부터 제조 분야에서 발생한 수익은 고스란히 IT 기반 기술을 확보하는 투자비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연구개발비로 쏟아 부은 투자비만 150억원을 넘어섰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신 회장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신 회장은 우선 파이프 제조 분야에 종사하면서 느낀 불편함, 고객사 요청을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생소한 IT 분야에서 무작정 새로운 기술 개발에 나서기보다 기존 사업 분야와 연계할 수 있는 미래 먹을거리를 찾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스마트폰으로 상·하수도, 전기, 통신, 가스, 송유, 열난방 등 7대 지하 매설물을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관거 관리시스템`도 이렇게 탄생했다. 땅을 파지 않고 매설물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솔루션이다.
“파이프를 공급하면서 지하에 매설한 각종 관거 상태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고객의 말을 듣고 떠오르는 게 있었죠. 땅을 파지 않고도 복잡한 매설물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보겠다고요.”
차후의 IT사업 영역은 이제 스마트 기술과 생활 인프라 융합 서비스까지 넓어졌다. 최근 국가 전력소비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냉난방전력의 절감 솔루션을 개발한 것은 그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CESS 에너지 절감 솔루션으로 명명한 제품은 24시간 냉난방기를 가동하는 은행ATM 코너 등을 겨냥한 제품이다. 신 회장은 차후의 IT사업이 “이제 걸음마를 뗀 상태”라고 말한다. 하지만 차후가 개발한 이 제품들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투자가 조금씩 결실로 돌아오고 있다.
스마트 관거 시스템은 상용화 이후, 현재 국내 굴지 대기업과 공급 계약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고, CESS 에너지 절감 솔루션도 국내 은행 두 곳과 계약을 전제로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 회장이 자부심을 갖는 개발품은 또 있다. 스펙타파로 불리는 새로운 채용 관리 시스템은 신 회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사업 아이템이다.
스펙 타파 시스템은 입사 지원자의 학력, 학점 등 스펙을 제외한 실제 업무 처리 능력을 검증한다. 차후가 한 달간 온라인상에서 미션을 제공, 검증해 지원자의 능력을 파악한다. 최근 한국남동발전도 차후에 의뢰해 지원자 3000명을 스펙타파 시스템으로 검증했다. 신 회장은 단순히 이 솔루션으로 매출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두지 않는다.
“기존 인력 채용 방식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스펙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에 여전히 확산이 쉽지 않습니다. 기업 인사책임자도 남이 하지 않은 새로운 면접 방식을 도입하기 부담스러워 하고요. 하지만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새로운 채용 문화와 검증시스템이 자리 잡을 때 창의적 인재가 사회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신 회장은 지금까지 차후의 행보에서 최근 화두인 `창조`의 의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신 회장은 창조경제의 의미를 융합에서 찾는다.
기존 기술, 제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경험으로 내린 창조의 정의다. 성공적 융합은 어떻게 이뤄야 할까. 신 회장은 산업, 기술 간 융합에 필요한 접착제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질적인 것은 결합이 어렵습니다. 때문에 단단한 접착제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창의적인 아이디어, 기술개발, 디자인 등이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신 회장은 특히 창조경제의 주인공으로 중소기업의 역할을 주목하면서 여전히 한계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은 의사·투자결정이 느리고 복잡한 반면 중소기업은 오히려 생태적으로 한계가 없다. 반면 중소기업의 열악한 영업환경은 창조경제 실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신 회장은 무조건적 긍정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기업인의 창업 붐이나 업종전환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비판 없는 긍정입니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조건 긍정과 낙관을 외치는 것은 회사 성장을 저해하는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신창훈 차후 회장은?
신창훈 회장은 고려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건설회사 토목사업부 입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04년까지 PVC 강관제조기업에서 임원생활을 하던 그는 같은 해 차후를 설립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신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경영방식을 두고 자유방임이라는 단어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사가 없다고 말한다. 파이프제조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은 IT사업을 진두지휘하지만 큰 그림만 그리고 직원 역량을 믿고 맡기는 게 신 회장 스타일이다. 때문에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직장을 옮기는 직원이 적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신 회장의 취미이자 특기는 바둑이다. 아마 4단으로 수준급 바둑실력을 자랑한다. 바둑을 둘 때 한 수마다 따르는 결정과 고민은 생활, 회사경영에 있어서도 다양한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 신 회장 설명이다.
포상이력으로는 2012대한민국벤처창업대전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수상했고, 2013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 중소기업청장 표창이 확정됐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