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입법을 추진 중인 웹보드 게임 규제안에서 월 한도 및 1회 베팅금액 제한 등 비용 상한선이 구체적인 근거 없이 설정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임은 분명 도박이 아닌데, 실제 입법 과정에서 도박과 동일한 잣대로 규제안을 만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앞으로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이 불가피해졌다.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BK21플러스사업단과 전자신문이 지난 9일 개최한 `게임 규제의 기술적 의미와 법률적 검토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문화부의 웹보드 게임 규제안(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문제점 투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1회 베팅금액 상한 규모(1만~3만원)와 10만원 이상 손실 시 일정시간 사용을 차단하는 등 정부가 구체 금액을 설정해 직접 규제하는 것은 국민기본권 침해라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베팅 상한선 근거 미약해”
우리나라 웹보드 게임은 지난 2004년부터 최대 월 30만원까지 결제할 수 있도록 규제 받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베팅금액 상한선과 일정 금액 이상 손실 시 사용을 차단하는 직접 규제의 배경이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윤명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는 “게임물 결제한도는 게임법이나 심의규정에서 개념이 정의돼 있지 않다”며 “게임물등급위원회 심의규정에서는 구매한도 등에 대한 규정이 없고 게임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월 30만원으로 결제한도를 논의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결제한도는 사업자의 자율적 의지로 설정한 것이고 이는 헌법상 보장된 영업의 자유에 해당하는데 정부는 되레 웹보드 게임 사업자를 도박보다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1회 최대 베팅금액 1만원, 10만원 이상 손실시 48시간 사용 차단 항목이 합법적 도박의 이용한도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실질적으로 도박산업에서 이용한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도박이 아닌 게임산업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카지노, 경마, 경륜, 복권 등 합법적 도박에 대해 1회당 베팅한도 혹은 구입 한도를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규제하고 있다. 강원랜드 카지노의 경우 테이블별로 1인당 1회 10만원 이하로 베팅, 영업장 전체 테이블의 2분의 1 범위에서는 1인당 1회 30만원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김 교수는 “게임머니의 재산 가치를 인정해야 사용한도를 제한할 수 있는데 만약 이번 개정안이 그대로 입법화된다면 게임머니를 사용하는 모든 게임은 도박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극단적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한국법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웹보드 게임 규제안이 사행산업 규제 수단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며 도박과 다른 게임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형법상 평등의 관념에 정면 배치된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도박과 게임은 엄연히 구분돼야 하는데 도박에 적용하는 규제수단을 게임에 활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도박에 대한 규제수단보다 더 강력한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카지노에 적용하는 베팅한도는 사용자의 공격적 베팅에서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한 기준”이라며 “정부 규제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국가에 의해 고안된 `코리안 포커`가 등장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윤명 교수는 “현재 결제한도 적용 범위가 아이디 하나당 전체 게임포털이 대상인지, 특정 게임물 하나만 대상인지 불분명한 것도 문제”라며 “만약 사업자가 게임물 하나로 결제한도를 설정하면 규제 취지와 전혀 다른 결과도 나올 수 있다”며 “업체들의 자율규제를 우선 적용해본 뒤 발생하는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것이 적합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 사업자 역차별,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논란
전문가들은 웹보드 게임 규제안이 한국 법에 의해 등록된 사업자를 역차별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일제히 지적했다. 해외 사업자들은 결제 한도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사업하는 게임업체들이 도리어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 외에 다른 콘텐츠 산업 부문에서 유독 게임만 결제 한도 상한선을 적용받는 등 형평성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봤다.
매회 본인 인증을 해야 하는 항목에 대해서는 인증 횟수가 잦아질수록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박지환 법무법인 나눔 변호사는 “본인인증이 잦아지면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라며 “대다수의 건전한 사용자들이 기본권을 침해받는 문제가 명확히 크다”고 말했다.
또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본인인증을 분기당 1회로 완화했지만 이 내용이 그대로 입법된다면 헌법소원을 통해 다시 적합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 사용자가 상대를 지정할 수 없는 전면 랜덤매칭도 문제로 지적됐다.
권민석 연세대 게임연구센터(GRC) 연구원은 “랜덤매칭은 게임 시스템을 운영·서비스하는 전 단계에서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품질관리(QA), 게임마스터(GM) 활동 등이 제약을 받게 되며 무엇보다 법적 규제가 개발자의 창의력을 제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김성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게임산업 자율규제 역사가 짧아 정부와 업계간 신뢰가 부족하다”며 “자율규제를 적용한 뒤 결과가 미흡하면 이를 수정해 나가면서 사업자들에게 좀 더 책임감을 부여하는 방안이 타당하며 법적 규제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를 주도적으로 이끈 이원형 한국컴퓨터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지난번 상하이 차이나조이에서 연 한·중 공동세미나에서도 한국 정부의 지나친 게임 규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며 “자국 게임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중국 정부와는 정반대 길을 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