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설립돼 `코르셋` `접속`으로 두각을 나타낸 명필름은 `시라노 연애 조작단` `건축학 개론` 등으로 이어지는 흥행작을 내놓으며 우리나라 대표 영화사로 자리매김했다. 어느덧 18년의 역사가 됐다. 영화계에서 한 회사가 이처럼 장수하기란 쉽지 않다. 명필름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까지 성장해왔다. 심재명 공동대표의 남편이자 영화감독, 제작자인 `이은`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현재 제작자 입장에서 영화계의 가장 큰 고민은 영화시장의 `독과점` 문제”라며 “지난 정부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할 만큼 규모를 키우기 위해 `대기업` 정책을 썼다”고 지적했다. 그는 “컴퓨터나 자동차 등은 자본의 논리대로 가는 게 맞지만, 영화는 창조산업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오래 갈 수 없다”며 “영화계에서 공정거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영화산업에 특정 사업자가 수직적 독점을 이루고 있는 상황은 `규모의 경제` 논리에서 출발한다. 고위험, 고수익 사업인 영화 산업의 특성상 대기업의 안정적인 자본이 유입되고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익 예측이 어려운 영화산업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고 투자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측면이 있다.
또 국내 영화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산업화·대형화로 유통 체계를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겨룰 수 있는 국내 콘텐츠 기업 육성이 필연적이란 시각이다.
그러나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제작사와 공동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하면 흥행 위주의 작품에 투자가 집중되고 결국에는 영화 종 다양성을해칠 수 있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보유하지 않은 소규모 배급사 영화는 예매와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돼 소비자의 영화 선택권이 줄어든다.
이 대표는 이 점을 지적했다. 그는 “국민여론, 업계 노력,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며 “엄격하게 공정거래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파라마운트 법을 예로 들기도 했다. 미국은 1948년 연방 대법원에서 파라마운트 픽처스를 비롯한 8개 주요 영화사의 극장 소유를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대기업이 영화 제작과 배급, 영화 상영관을 동시에 소유해 수직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폐해를 막은 것이다.
이 대표는 “독립영화 문제도 있는데, 국가적으로 예술영화나 자국 독립영화인들 위해 독립영화 보호 정책을 마련하고 시네마 테크를 육성해야 한다”며 “대기업 계열로 다양성이 사라지고 사회가 획일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 다양성은 결국 사회의 역량, 국민의식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 스크린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특정 1개 영화가 1개 복합상영관 내에서 상영될 수 있는 스크린 수를 제한하거나 △특정 영화의 국내 전체 상영관 점유율에 상한선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에 이 내용이 반영되면 상영 기회를 얻는 영화가 독립·예술영화가 아니라 박스오피스 2위 또는 3위 영화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1개 영화에 집중되던 스크린 독점 현상이 상위 2~3개 영화의 과점 현상으로 바뀔 뿐 상영되는 전체 영화의 수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논리다.
복합상영관 스크린 수나 전체 상영관의 스크린 점유율을 제한해도 제도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또 인위적인 시장 개입 방식으로 복합상영관 사업자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상황도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다행히도 영화 수입의 `극장 의존도`는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DVD 시장이 침체되면서 커지던 불법 다운로드 수요가 IPTV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부가 판권 수입을 IPTV의 주문형비디오(VoD) 매출에서 얻고 있다.
그는 “기존에는 극장 매출 의존도가 90%였다면, 지금은 영화 매출액의 20~30%가 IPTV에서 나온다”며 “매출이 다변화되는 건강한 구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물론 산업적으로 건강한 것과 작품적 건강은 다르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도 건강한 이익구조가 바탕이 돼야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스크린 독과점의 근본 해결책이 되기는 힘들다. 매년 상영 영화의 일정비율 이상을 다양성 영화로 할당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영화 상영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실질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요즘 이은 대표는 후학 양성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 대표는 “명필름이 20주년을 향해 가는데, 영화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없어도 국내 영화 산업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게 됐다”며 “훌륭한 후배 영화인을 길러내는 것이 영화계와 한국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명필름이 만든 영화학교는 한 해 10명씩 10년간 100명을 길러낼 계획이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데뷔할 정도의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을 뽑아 더 잘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한다”며 “영화 산업에서 긍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경쟁력과 정신력을 길러서 내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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