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양 옆으로 끝없이 늘어 서있는 나무 너머로 나즈막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조경이 잘된 커다란 정원이다. 중국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화웨이 본사에서 받은 첫 느낌이다. 1.5㎢에 달하는 이곳 본사 어딜 가도 건물과 길거리에 나무와 수풀이 가득하다. 건축을 전공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이 직접 친환경 사옥 건축과 건물 하나하나 설계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스스로 성장하는 힘…`엔지니어가 중심`
본사 선전에 위치해 화웨이 차세대 핵심 기술을 연구하는 `2012 랩스(Labs):중앙 소프트웨어 연구소(Central Software Institute)`에 들어섰다. `혁신의 엔진`이라 불리며 분야별 사업에 대한 기술 개발을 맡는 핵심 연구 기지다.
건물에 들어서기만 했는데 눈이 부시다. 건물의 벽면과 천장 곳곳에 통유리를 써 자연광이 복도를 비춘다. 미디어 부서에 일한다는 수차이 매니저는 “설계할 때부터 전기 조명 없이도 최대한 태양의 빛으로 건물 내부를 밝힐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처음부터 본사의 모든 사옥이 환경을 먼저 생각해 지어졌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자연 환경과 직접 더불어 맞닿아야 긍정적 생각과 여유가 생기고 그 안에서 창의적 생각도 살아난다고 믿는 런 회장의 철학이 녹아있다. 복도와 사무실 발길 닿는 곳 마다 나란히 줄지어 가져다 놓거나 군데군데 직접 심은 여러 종류의 수목이 낯선 이까지 반긴다. 세련되지 않아도 그 정성을 알만하다. 오가거나 자리에 앉은 직원들의 만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왠지 모를 들뜨고 즐거운 느낌은 불시 방문객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런 회장을 비롯한 화웨이 임원들이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하는 철학 중 하나가 바로 `자생적 성장(Organic growth)`이다. 인수합병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성장하겠다는 의미다. 자생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바로 기술을 만드는 자의 힘에서 나온다고 믿는 회사다. 사옥부터 경영 시스템 일체가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이뤄진 가장 큰 배경이다. 모든 시설과 체계도 엔지니어의 몸과 마음을 배려했다.
연구소 건물 내부는 온통 식물과 꽃, 그리고 벽면은 엔지니어들의 소소한 일상 사진 등으로 꾸며졌다. 오락과 여가를 위한 운동기구도 잊지 않았다. 수 매니저는 “엔지니어의 점심시간은 2시간”이라며 “충분히 쉬어야 창의적 생각도 나온다는 회사의 배려”라 말했다. 또 “R&D 인력이 야근을 하게 하면 다음날 근무 시간이 조정되는 등의 배려를 한다”고 부연했다. `중국에서 가장 좋은 남편감은 화웨이 엔지니어`란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한 눈에도 젊어 보이는 엔지니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건물을 나온다. 화웨이 본사란 사실을 모른다면 대학 캠퍼스로 착각할 정도다. 나이는 불과 20대 초반에서 기껏해야 30대 정도로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화웨이가 공식적으로 밝히는 엔지니어 임직원 평균 나이는 29세. 젊은 R&D 군단이다. 아시아·미주·유럽 전 세계에 걸쳐 글로벌 15만명 직원 중 7만명이 연구개발(R&D) 인력으로 이뤄진 것은 이미 잘 알려졌다. 선전 본사에 상주하는 4만5000여명 임직원 중 2만명 가량도 R&D 인력이다.
◇타의 추종 불허 기술 개발 경쟁력
화웨이가 엔지니어 중심 회사란 것은 최고 경영진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화웨이를 이끌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최고위 이사진 13명의 BOD(Board of Director) 임원 100%가 공학도 출신이다. 주로 재무·경영 전공 출신이 경영진을 이루는 다른 기업이 상상하기 어려운 구성이다. 스콧 사이크스 화웨이 부사장은 “13명은 모두 화웨이에서 20~25년씩 일한 경력 등 이력이 비슷한데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은 컴퓨터 공학을 비롯한 엔지니어 전공이란 점”이라며 “흔한 금융 출신도 없다”고 말했다.
베테랑 엔지니어가 경영 관점에서 끌고 젊은 엔지니어들이 속도로 뒷받침해 추진력을 얻는 화웨이의 제품 개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6.18㎜ 두께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하드웨어 혁신 아이콘이 된 화웨이는 반도체를 비롯해 통신·네트워크 원천 기술에서 확장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을 장악해 가고 있다. 5G 기술을 비롯한 차세대 통신 인프라 기술 개발에도 한창이다. 자칫 `노장` 경영진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빠른 기술 변화를 그때그때 습득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실시간 경영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순환(Rotating) CEO` 제도를 운영한다.
화웨이의 제품 개발 속도를 뒷받침하는 숨은 요소 중 하나는 중국과 세계 여러 국가와 단체의 인증을 받은 자체 테스트 센터다. 통신·네트워크 장비·부품 등에 대한 인증 시험 등을 직접 수행하고 제품을 출시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R&D 프로세스도 철저하고 빠르다. 미국·유럽·일본 등지 세계 각지에 R&D 센터와 인력을 확장하는 화웨이는 `통합제품개발(IPD)`이라 불리는 자체 표준 프로세스를 운영한다.
R&D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투자 규모도 대담하다. R&D 인력수가 2만1400명이어서 화웨이의 세배에 달하는 에릭슨의 R&D 투자 규모와 맞먹는다.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의 13%에 달하는 47억달러(약 5조1000억원)를 R&D 투자에 썼다. 지난해 9월엔 영국에 위치한 유럽 연구소에서만 5년 간 20억달러(약 2조1710억원)를 투자할 것이라 밝혔다.
스콧 부사장은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하기 때문에 매출액이 매년 커지는 것을 감안하면 R&D 투자도 덩달아 빠른 속도로 매년 늘어나는 셈”이라며 “R&D 투자는 화웨이의 중요한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선전(중국)=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