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최저가입찰제 정말 필요한가

[기자수첩]최저가입찰제 정말 필요한가

우리 후대를 위한 국가 인프라 사업이 최저가입찰제도 탓에 무분별한 `치킨게임`으로 전락할 조짐이다. 한국전력이 국민이 낸 전기요금 1조7000억원을 들여 진행하는 스마트그리드 원격검침인프라(AMI) 구축 사업이 그것이다.

발주처와 업체 간 입찰 비리 의혹으로 최근 3년간 두 차례나 대대적인 감사원 감사까지 받았지만 입찰 논란은 여전이 끝이 안보인다. AMI 구축 사업은 지난달 사업자 선정공고로 사업이 3년 만에 재개됐다.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에 비율에 따라 국민(수용가)이 납부한 전력산업기반기금 1조7000억원을 투입해 2020년까지 전국 2194만가구에 AMI를 구축할 계획이다. 올해는 전국 200만 가구에 AMI 구축하며 올해 사업비만 600억원 이상이 편성됐다. 한번 사업자로 선정되면 차기년도 사업선정에 유리하기 때문에 관련 업계의 입찰경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이달 사업공고 마감을 앞두고 입찰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합작회사를 만들거나 외주업체까지 활용해 입찰을 준비하는 업체가 생겼다. 어떤 업체는 최대 3개의 기업에 다리를 걸치며 입찰을 준비 중이다. 실제 한 곳의 개발·생산 제품을 가지고 입찰에는 다수의 업체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개발 생산 부담 없이 입찰에 선정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사업자인 셈이다.

결국 검증 안 된 업체의 난립으로 정작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피해가 보는 건 피할 수 없게 됐다. 3개월 전에도 한전의 스마트그리드 관련 사업에 엉뚱한 업체가 선정돼 논란이 됐고 사업은 지금까지도 수행을 못하고 있다. 한전은 해결책도 내놓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스마트그리드 AMI는 한번 구축하면 20년 이상 사용한다. 그만큼 기업의 기술 신뢰가 요구되는 장기 사업이다. 전국 수용가의 전력수요와 소비패턴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국가 전력수급에 반영하는 스마트그리드 핵심이다. 한전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검증절차 없이 가격만 낮게 해서 입찰에 참여하는 최저가입찰제도를 기업들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내부 행정적 근거가 없다면 실사를 통해서라도 정상적인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