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김균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 부품 성적서 위조 사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직시켜달라고 제청했다. 정부는 김 전 사장의 자진 사퇴를 수용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면직 조치를 취했다. 취임 1년 만이다.
김 전 사장은 “잃어버린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고자 대대적 개혁을 단행해 정말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진심 어린 속죄를 해야 한다”는 취임 일성을 시작으로 원전 비리척결에 전력을 다했다. 전문성 논란에도 발전소 기술직 직원 순환 배치를 시작으로 본사 임원급 직원 공모 채용·조직축소·본사 인력 지역발전소 발령·검사출신 인사 감사관 임명 등 일련의 쇄신책을 단행했다. 김 전 사장이 1년 내내 한 일이 한수원 개혁이었다.
그 사이 드러난 원전비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짝퉁 부품 논란을 비롯해 마약 투여, 부품 품질 보증서 위조, 시험기관 시험성적표 위조 등 거의 복마전이었다. 대부분 김 사장 취임 전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김 전 사장은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수원 내부 비리구조와 처리 방법을 잘 아는 전문가 한 명을 잃는 순간이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이 퇴진을 안타까워했다. 일각에서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죄인처럼 물러나게 하는 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말도 나왔다.
수십 년 관행처럼 굳어진 비리 사슬을 끊어내기 쉽지 않다. 한수원에 몸담은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변할 마음이 없다면 절대 거듭날 수 없다. `아무렇지 않게 반복해 온 일처리가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한다.
지난 17일 조석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부) 차관이 신임 한수원 사장으로 선임됐다. 원전비리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일으켜 세우는 게 그의 임무다. 뿌리 깊이 박힌 관행이 사장 한 명이 365일 현장을 쫓아다니며 척결을 외친다고 바로 없어지지 않는다. 구성원 모두 스스로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멀리 내다보는 마음으로 신임 사장에게 신뢰라는 힘을 실어주면서 쇄신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