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날개 없이 날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녀배달부 키키` 주인공 키키는 13살이 되면 독립해야 하는 마녀다. 그는 한 마을에 정착해 빗자루를 타고 배달 일을 시작한다. 마을에 살고 있는 톰보라는 남자 친구는 나는 게 꿈이다. 자전거에 프로펠러를 달아 달려보기도 하고 비행연구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빗자루만 있으면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키키를 부러워한다.

키키는 첫 배달 일을 하면서 까마귀들의 오해를 받아 공격을 받아 빗자루 털을 물어 뜯긴다. 이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 긴박감이 넘치는 순간 중 하나인데 보면서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빗자루 털이 다 뽑히면 키키는 날지 못해 떨어질까?`

날기 위해서 인류는 양력을 이용하고, 그러려면 공기 흐름을 변화시켜 양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게 통념이다. 비행기 같은 유선형 날개가 아니라면 적어도 빗자루 꼬리에 붙은 털은 달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작품은 키키가 날 수 있는 이유를 마법의 힘으로 설명한다. 톰보가 키키를 태워 프로펠러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교통사고가 날 뻔 했을 때 키키의 마법이 작동해 자전거를 공중에 띄웠던 것. 키키는 마녀는 빗자루가 없어도 날 수 있지만 굳이 빗자루를 사용한다는 결론이 났다. 역시 자연법칙을 거스르니 `마법(魔法)`이라고 부르는 것일 테다. 그러면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흔히 보는 고정익(양팔 날개) 비행기가 뜨는 원리는 유선형 날개 표면을 따라 공기가 흐를 때 각도 차에 따라 날개 위의 공기가 가속을 하게 되고, 아래 방향으로 강한 힘이 작용하면 작용반작용의 법칙(뉴턴의 제3법칙)에 따라 위로 작용하는 힘(양력)이 생겨 날개를 띄워 주는 방식이다. 헬리콥터 역시 날개가 있다. 회전익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엔진이 날개 중심의 로터를 돌려 주변 공기의 흐름과 압력을 변화 시켜 양력을 얻는다.

날개 없이 공기 흐름을 바꿔 양력을 얻을 수 있다면 날개 없는 비행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날개 없는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날개 없는 선풍기 원리를 살펴보면 날개가 없는 게 아니라 날개를 안 보이게 감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스탠드 안에 내장된 날개(팬)을 이용해 공기를 빨아들인 뒤에 이 공기를 둥근 고리 위로 밀어올리면 링 내부에 빠른 유속이 생기고, 주변 공기가 고리 안쪽으로 유도돼 바람을 일으킨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효율면에서도 그렇다. 에너지보존법칙(열역학 제1법칙)에 따라 내부 팬이 만들어내는 바람보다 윗부분에 더 큰 공기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다. 안전성은 좋지만 날개 달린 선풍기에 비해 효율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맥 빠지는 이야기지만 있다. 원하는 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방향 조절이 힘들 뿐. 미확인비행물체(UFO)를 일컫는 것도 아니다. 로켓 역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하지만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대표적인 발사체다. 폭발력을 이용해 수직으로 비행하기에는 최적이지만 수평 이동은 쉽지 않다. 물론 아이언맨처럼 연습을 통해 방향 제어 방법을 터득한다면 유용할 테지만. 아이언맨이 입은 것처럼 개인용 수트라면 모를까,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연료 분사량과 방향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꽤 오랜 세월동안 날개 없이 사람을 태우고 날아온 물체가 있긴 하다. 열기구와 비행선이다. 열기구는 공기를 가열해 부피를 키워 밀도를 낮추는 원리를 이용한다. 열기구 풍선 속 공기 밀도가 주변 공기보다 작아지면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다. 풍선이 공기 중에 뜨는 원리와 유사하다. 비행선도 내부 공기 밀도를 공중의 공기보다 낮춰 하늘을 날 수 있다. 다만 탈 수 있는 인원이 상당히 제한적이고 방향 조절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날개 없는 비행기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이 비행기는 둥근 삼각형 모양이고 유압장치를 달아 원리는 로켓과 유사하다. 방향 제어를 위해 꼬리날개를 3개 달았다. 나사는 우주왕복선이 귀환할 때 이 비행체의 원리를 이용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상용화는 언제쯤 될지 미지수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