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가로나 세로로 움직이면 화면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스마트폰에 움직임을 인식하는 가속도 센서가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닌텐도 위(Wii)에는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장착돼 실감나는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모든 게 미세전자기계시스템으로 불리는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기술 덕분이다. MEMS는 각종 기계 및 전자기기를 소형화·융합화한 첨단 기술이다. 기계장치를 마이크로미터(㎛) 단위 초소형으로 만들어 반도체 공정에서 생산한다. 일반 웨이퍼로 대량 생산할 수 있고 반도체 회로·공정·설계를 응용하기도 한다.
지난 1990년대 후반 기술 개발이 본격화됐지만, 3~4년 전 스마트폰 시장 확대로 급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앞으로는 스마트 기기뿐 아니라 자동차·의료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조사업체 욜디벨러프먼트에 따르면 지난해 MEMS 시장 규모는 110억달러(약 12조3332억원)에 이른다. 다른 모바일 반도체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통합되면서 시장이 줄어드는 것과 달리 MEMS 시장은 2018년 230억달러(약 25조7876억원)로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ST마이크로·보쉬·인피니언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이 MEMS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MEMS 기술로 기존 부품을 대체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싸이타임과 디세라는 MEMS 기술을 활용한 오실레이터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오실레이터는 스마트폰·디지털카메라 등에 쓰이는 부품으로 반도체에 일정한 전기신호(클록) 주파수를 제공한다. 종전에는 수정이 주로 쓰였다. MEMS 기술로 수정 오실레이터를 대체하면서 생산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실리콘랩스도 상보형금속산화반도체(CMOS)와 MEMS 공정을 통합한 MEMS 오실레이터를 출시했다.
MEMS는 반도체 산업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이 MEMS 사업을 중단하거나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공정 기술을 제공하는 외주생산(파운드리) 업체가 거의 없는데다 산업 인프라도 취약한 탓이다. 국내 중견기업 바른전자는 MEMS 센서 개발을 시도했지만, 얼마 전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티엘아이와 파트론 같은 중견기업은 MEMS 제품 개발에 성공했지만, 판매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MEMS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동안 해외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 한 전문가는 “국내 유일의 MEMS 팹을 보유한 지멤스는 아직 생산 기술 수준이 글로벌 업체에 비해 떨어진다”며 “파운드리 업체도 없고 종합반도체업체(IDM)들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