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는 업계에서도 유명한 메이저리그 야구광이다. 그는 지난 2000년대 초반 무적의 뉴욕 양키즈와 맞붙은 오클랜드 어슬래틱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오클랜드 어슬래틱스는 선수단 연봉총액이 뉴욕 양키스 최고연봉자 한 명과 맞먹을 만큼 재정이 빈약했고, 팀 전력 역시 최악의 수준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팀에 빌리 빈이라는 천재 단장이 취임하면서 골리앗 같은 부자 구단 팀을 물리치고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적을 일으킨다.
오클랜드 어슬래틱스가 강팀으로 바뀐 이유를 풀어낸 `머니볼`은 박 대표가 가장, 그리고 즐겨 읽는 책이다. 박 대표는 “전혀 네임밸류가 없던 팀이 갑자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메이저리그 전체를 뒤흔들었던 그때를 기억한다”며 “머니볼의 소재는 야구지만 책이 출시되자마자 월스트리트 경영인들이 열광했던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머니볼은 맨해튼과 월스트리트의 비즈니스 전문가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실력은 갖추었으나 저평가된 선수들을 찾아내고, 이들의 가치를 최고로 끌어올린 다음 최적의 타이밍에 트레이드하는 빌리 빈의 경영전략에 열광한 것이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결과는 투자가 말해준다. 최고의 투자만이 최고의 성적을 얻어낼 수 있다`는 철학으로 무장해 있었다. 하지만 빌리 빈은 통계에 기반한 선수평가 기법을 도입, `홈런이나 타율보다는 출루율` `타점보다는 장타율`에 초점을 맞추고 팀 전체를 혁신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빌리 빈 단장은 130여년 동안 신봉되어왔던 전통적인 선수평가 방법을 거부했다.
박 대표는 당시 정량적으로 측정되지 않을 것 같았던 메이저리그 업계가 서서히 변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컸다고 말한다. 벤처캐피털 심사역을 거쳐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로 취임하면서 벤처 스타트업 분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은 불굴의 도전정신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고들 한다”며 “하지만 스타트업 역시 성공을 좌우하는 정량적 모델이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스타트업 성공 방정식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오클랜드 어슬래틱스의 성공을 단순한 행운, 심지어는 사기에 가까운 저급한 편법 정도로 치부했던 대부분의 구단들도 이제는 빌리 빈 단장을 따라가고 있다. 박 대표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기록들이 귀중한 자료로 바뀌었고, 능력 있는 분석전문가들이 구단프런트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며 “빌리 빈 단장은 종합적인 나의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보면 박 대표와 빌리 빈 단장 사이에도 벌써 공통점이 보인다. 오클랜드가 전통적인 메이저리그 방식을 타파하면서 `머니볼웨이`라는 방식을 만들어낸 것처럼 패스트트랙아시아도 전통적인 벤처캐피털 역할을 넘어 직접 벤처를 만들고 육성하면서 국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통의 파괴자라는 측면에서 이들은 맹랑한 반란자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성공과 실패를 눈여겨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