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업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전PLC의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1999년 한국전력·산업통상자원부(구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을 주축으로 스마트그리드 AMI 핵심부품인 PLC칩을 개발해 시범사업을 거쳐 인프라 구축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의 구축 사업 첫 해인 2010년에는 미완성된 칩을 사업화시켜 중단했고 이어 2년 만에 재개된 2012년 사업 역시 상호운용성 등 미완성 칩을 통과시키려는 부당 행위로 두 차례 모두 상용화에 실패했다.
칩 문제로 2년 넘게 사업이 지연됐지만 사업 주체인 한전은 해당 PLC칩만을 고집하고 있다. 수년째 해당 칩에 기반을 두고 장비와 사업을 준비한 업계의 불만은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와는 반대로 해외 국가 대다수는 저·고속 PLC 및 무선통신을 결합한 형태로 AMI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업계는 사업의 연속성은 물론이고 해외 경쟁력도 없는 칩에 더 이상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업계 한 사장은 “세계 어떤 나라도 우리처럼 특정 칩만을 사용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며 “칩 때문에 수년째 고생했는데 다시 제기된 올해 사업마저도 한전PLC의 불안함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다시 재개된 올해 사업 역시 한전PLC의 성능을 우려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달 올해 AMI 구축사업에 AMI용 데이터집합장치(DUC) 5만6250대와 전력선통신(PLC)모뎀 73만6521대 입찰 공고를 냈다. DCU 1대당 최다 200대에서 최소 50대 이상의 PLC모뎀과 연동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 사업의 입찰수량을 따지면 DCU 1대당 약 13대의 모뎀과 연동되는 수량이다. 해외 입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PLC의 통신성능을 우려해 DCU 수를 필요 이상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한 사장은 “지난 2010년 한전이 금천구에 구축한 AMI를 보면 DCU 1대당 PLC모뎀 1대 비율로 설치한 곳도 있다”며 “1억만개 이상 팔린 검증된 칩도 있는데 한전PLC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스마트그리드 업계의 해외 경쟁력은 수년째 정체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우즈베키스탄 전력청의 대규모 AMI구축사업에도 국내외 여러 기업이 사업에 참여 중이지만 스펙이 맞지 않아 한전PLC칩은 채택되지 않았다.
해외 다수의 국가는 저·고속 PLC를 포함해 지그비 등 다양한 무선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한전PLC는 2009년 ISO국제표준(IEC12139-1)에 지정됐지만 지금까지 국내를 포함해 해외 시장에서 적용된 사례는 없다. 반면에 미국 마벨의 PLC칩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채택돼 미국과 체코 등에 적용됐으며 인도네시아·이란·일본 등에도 사업이 진행 중이다. 퀄컴도 국제전기전자기술협회(IEEE)에 이름을 올려 미국 등에서 구축사업이 한창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산 부품이나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더 큰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데 국산화를 명목으로 한전PCL만을 고집하고 있다”며 “한전 논리라면 우리 산업계는 PC용 CPU도 국산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